“북한에선 교화소 생활이 힘들어서 바늘을 삼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 한 모금도 주지 않고 말라 죽이기 때문이죠.”
탈북 여성 이모씨는 지난해 9월 북한 보위부에 붙잡혀 교화소 생활을 했던 때를 떠올리며 “그런 지옥은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였다”고 증언했다. 남북하나재단과 새누리당 원유철 김영우 의원이 27일 ‘통일과 북한이탈주민의 역할’이란 주제로 국회 의원회관에서 연 국제세미나에 참석한 이씨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자신의 겪은 일을 떠올릴 때마다 고통스런 얼굴을 감출 수 없었다.
그녀는 2010년 북한 양강도에 거주하며 중국에서 물건을 구해다 북한에서 파는 일을 생계로 삼아왔다. 그러다 북한 보위부에 체포됐고, 수개월간 교화소 생활을 했다. 교화소를 출소한 뒤 집으로 돌아와 보니 남편은 이미 사망해 있었다. 아들 두 명을 데리고 더 이상 살림을 꾸려나가기 어렵다고 판단한 그는 탈북을 결심했다.
그러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2013년 7월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넘어간 날 저녁부터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중국인 브로커가 다른 북한여성을 성폭행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했다. 그녀는 “같이 북한을 탈출한 17살짜리 저희 아들도 그 장면을 봤는데 충격이 얼마나 컸겠느냐”며 “브로커한테 의지하다 원치 않는 임신을 하는 여성들이 많다”고 폭로했다. 이씨는 “고향의 오빠가 올케와 같이 건강하게 다시 만날 그날까지 잘 계셨으면 좋겠다”는 말로 증언을 마쳤다.
이씨에 이어 증언에 나선 평안북도 출신 여성 김모씨는 2008년 2월 중국과 몽골을 거쳐 한국에 들어왔다. 그녀의 생계도 이씨와 마찬가지로 중국에서 식료품을 구해 북한에 파는 일이었다. 이 일을 하다 중국인을 만나 결혼했지만 북한 보위부는 예외를 두지 않았다. 붙잡혀 갖은 고문 끝에 석방됐다. 중간에 억울함을 호소할 재판은 아예 상상할 수도 없었다고 한다.
김씨는 “손바닥을 바닥에 펴게 한 뒤 쇠뭉치로 뼈 마디마디를 내려치고 소가죽으로 된 혁대로 때렸다”고 증언했다. 또 “‘붙잡히면 맞아죽더라도 너 혼자 죽어라. 형제, 아버지도 다 죽었다고 불지 말라’는 아버지 말씀만 생각하며 참아냈다”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아울러 김씨는 탈북주민 정착 과정에서 좀 더 많은 정부의 배려가 필요하다는 말도 했다. 그는 “처음에 한국에 와서 회사생활을 하기도 했는데 불안감도 크고 남한 사람들과 신체적으로도 달라서 적응하기 너무 어려웠다”면서 “탈북자들이 자존감을 갖고 살 수 있도록 정착 초기에 일자리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최근 북한인권법안을 대표발의한 김 의원은 “탈북 여성들의 생생한 증언을 들으니 북한인권 개선에 대한 각오가 다시 한 번 다져진다”며 “더 따뜻한 마음으로 탈북자 정착에도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
[기획]탈북 여성들이 증언한 북한 인권유린
입력 2014-11-27 1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