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삼척시 노곡면에 거주하는 방모(72)씨는 최근 아찔한 일을 겪었다. 혼자 사는 방씨는 직접 만든 찌개를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은 걸 깜빡하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20분쯤 지났을까 찌개가 타기 시작했다. 연기가 방안에 자욱해졌다. 깜짝 놀라 싱크대로 달려가다 넘어졌다. 허리를 삐끗해 꼼짝할 수 없었다.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방씨를 구한 건 ‘화재경보기’였다. 정부가 시행하는 ‘독거노인응급안전돌보미사업’(노인안전돌보미) 대상자였던 방씨 집에는 화재경보기를 비롯한 안전장치가 설치돼있었다. 응급상황 발생을 확인한 사회복지사가 전화를 시도했다. 연락이 닿지 않자 119에 출동요청을 했다. 현장에 출동한 소방대원은 냄비에 붙은 불을 끄고 방씨를 즉시 병원으로 옮겼다.
노인안전돌보미는 고독사 위험이 있는 독거노인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2008년 시작됐다. 만 65세 이상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 독거노인, 치매 또는 치매고위험군 노인이 대상이다. 1년에 한번 실태조사를 거쳐 발굴된 노인의 동의를 얻거나 직접 지방자치단체에 관리를 신청한 가구를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현재 서울을 제외한 194개 시·군·구에서 시행되고 있다.
시스템은 이렇다. 우선 대상 가구에 32만원 상당의 화재·가스 감지기, 활동센서, 응급호출기 등 6개 장비를 설치한다. 화재 또는 가스 누출이 감지되거나 응급버튼을 누르면 인근 소방서에서 출동한다. 천장에 설치된 활동센서를 통해 4시간 이상 움직임이 없으면 사회복지사가 연락을 취하고 직접 가구를 방문한다. 장시간 밖에 나갈 경우 ‘외출버튼’을 누르고 외출하면 된다. 관련 데이터는 소방사와 사회복지사에게 실시간 전송된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2009년 2월부터 지난 9월까지 총 1만669건 출동했다”며 “챙겨 줄 사람 없는 노인들에게 든든한 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취지는 좋지만 문제도 있다. 예산부족이다. 노인안전돌보미 관련 예산은 2012년 67억, 올해 72억, 2015년 77억으로 매년 늘고 있다. 하지만 장비 값에 사회복지사 인건비까지 포함된 금액이라 131만7000여명에 이르는 독거노인 모두를 돕기엔 역부족이다. 실제로 올해까지 서비스를 받는 가구는 7만 가구에 그친다. 홍보 활동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설치가구가 2011년 1만8700가구, 2012년 1만1500가구, 지난해 1만 가구로 계속 줄고 있다.
열악한 사회복지사 처우도 문제다. 노인안전돌보미 활동을 전문으로 하는 사회복지사는 166명에 그친다. 대신 5000여명의 노인돌봄종합서비스 관련 사회복지사가 노인안전돌보미까지 함께 하고 있다. 정비 설치 등에 전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 예산이 없어 하루 8시간을 넘으면 무급으로 일한다. 강원지역의 한 사회복지사는 “언제 사고가 발생할지 몰라 돌아가며 1명씩 센터에서 밤을 새고 있다”며 “돈이 안 나와도 사명감으로 할 수 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오인신고가 많은 것도 골칫거리다. 복지부는 오인신고를 줄이기 위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소방방재청은 “효과가 없다”고 반박한다. 한 소방서 관계자는 “전체 출동의 5~10%가 오인신고”라며 “막상 나가보면 버튼을 잘못 누르거나 하는 경우가 꽤 있어 허탈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경기지역의 한 사회복지사는 “색깔이나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치매 노인의 경우 응급호출 버튼을 침대 뒤편에 설치하고 있지만 오인신고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노인 고독사가 늘고 있는 고령화 사회를 맞춰 관련 사업을 키워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진수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선진국처럼 이웃간 교류가 활발하고 지역사회 내 노인관리서비스가 정착되지 않은 우리나라는 노인안전돌보미가 꼭 필요하다”며 “관련 예산을 늘리고 소방방재청과 복지부가 합심해 오인신고를 줄일 방안을 마련하는 등의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독거노인 대신 119 출동요청 ‘독거노인 응급안전 돌보미’ 아시나요
입력 2014-11-26 14: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