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사상 초유 수능 사태, 교육당국의 ‘5대 잘못’

입력 2014-11-25 19:54

2015학년도 수능 최종 정답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은 마치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구하기’ 같아 보였다. 24일 정부세종청사 브리핑룸에서 김성훈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비장하게 사퇴 의사를 밝힌 뒤 황 부총리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는 평가원의 책임을 언급하면서 대책이라며 내놓은 수능개선위원회(가칭)로 시선을 돌린 뒤 퇴장했다.

황 부총리 발언 중 사과 비슷한 언급은 딱 두 마디였다. “안타깝다”와 “심심한 유감”. 제3자의 입장일 때 할 법한 말이었다. 대신 ‘수능 주관 위탁기관(교육부)’ ‘수능 업무를 위탁·수행하는(평가원)’ 등의 표현을 사용하며 교육부가 ‘평가원에 맡긴 업무’란 점을 강조했다.

수험생·학부모가 느끼는 분노는 단지 출제 오류와 난이도 문제가 아니다. 일이 터진 뒤 교육당국이 보여준 태도는 그들을 더 좌절하게 한다. 이번 사태에서 드러난 교육당국의 ‘5대 잘못’을 추려봤다.

①무례·무성의·무책임=황 부총리는 25일 서울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도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다. 앞으로 잘해보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는 지난 8월 8일 취임했다. 지난해 수능 세계지리 오류 사태에선 자유로울 수 있지만 올해 수능은 그의 책임이다. 더구나 수능에 앞서 지난달 31일 가진 세계지리 오류 기자회견에서 “엄중 조치” 등을 외치고도 이번 사태를 막지 못했다.

김재춘 청와대 교육비서관도 이 사태의 책임자 중 한 명이지만 일언반구 언급이 없다. 평가원장은 수능 오류가 불거지면 그만두는 게 ‘관례’처럼 돼버린 터라 유감스럽게도 그의 사퇴에 부여할 의미는 별로 남아 있지 않다. 평가원장이 출제 오류로 사퇴하기는 벌써 세 번째다.

②수험생·학부모에 대한 배신=수험생들은 교육당국이 꿈을 앗아갔다며 분개한다. 자연계 재수생인 김모(19)양은 “원하는 전공이 있지만 삼수는 겁나서 못한다. 지난해엔 선택 영어, 올해는 물수능 출제 오류, 내년엔 뭐가 기다릴지…”라고 했다. 김양은 생명과학Ⅱ 8번 문항에서 당초 정답인 ④번 선택자다. ②번도 복수정답으로 인정되면서 ‘패닉’(공황상태)에 빠져 있다.

배신은 6월과 9월에 치른 모의평가부터 시작됐다. 평가원 주관으로 실시되는 두 차례 모의평가로 수험생들은 수능 난이도를 예측한다. 평가원은 수험생 수준을 가늠한다. 올해 수능에서 교육당국은 이를 깡그리 무시했다. 국어·수학은 9월 모의평가와 ‘극과 극’이었다. 게다가 올해는 교육부가 수능 이후 원서를 접수하는 수시 2차를 없앴다. 수험생들은 6월과 9월 모의평가 점수를 바탕으로 수시를 지원했다. 수험생의 뒤통수를 아주 세게 친 것이다.

③‘불통’ 후속조치=교육당국은 수험생보다 ‘형식’을 더 신경 쓰는 듯했다. 수험생의 요구는 단순했다. 영어 25번과 생명과학Ⅱ 8번 문항의 오류 여부를 빨리 결정해 달라는 것이었다. 수능을 치른 수험생은 한시가 급하다. 수시 대학별 고사를 치를지 말지 먼저 판단해야 한다. 최저학력기준에 맞는지, 정시가 더 유리한지 등은 가채점 결과가 바탕이다.

그런데 당초 날짜(24일)를 고수했다. 이의신청위원회 일정과 절차를 준수하는 게 ‘국민과의 약속’이라고 했다. 복수정답으로 수천~수만명의 점수가 오르내리는 상황을 방치하다가 논술고사가 다 끝난 뒤에야 오류를 인정했다.

④수험생 두 번 죽이는 불투명성=혼란의 와중에 교육당국이 수험생에게 주는 정보는 극히 미미했다. 덕분에 입시업체들은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한 입시업체 관계자는 “수험생들의 질문이 5~6배 폭증했다”고 했다. 교육당국은 두 문항을 복수정답으로 결정하면서 “수험생들 유·불리는 채점하지 않아 모른다”고 말했다.

이를 따져보지 않았다면 자신들의 결정이 얼마나 많은 수험생에게 영향을 주는지는 무시한 채 움직인 것이다. 채점을 해서 청와대 등에만 보고했다면 대국민 사기다. 수시가 한창인 때에 “오류 수정도 출제 과정의 일부”라고 주장하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을 우리는 목격했다.

⑤있지도 않은 전략=다음 달 만들어지는 수능개선위원회는 비판 여론을 피하려는 꼼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대학서열→학벌→양질의 일자리’로 공고화된 구조를 약화시킬 전략이나 비전은 없다. 그냥 위원회 하나로 ‘소나기’만 피하는 것이다. 20여년간 집단이기주의와 정권에 휘둘리며 대학 입시를 누더기로 만든 영혼 없는 교육당국의 모습은 반복되고 있다. 이게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분노를 쉽게 누그러뜨리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아닐까.

세종=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