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을수록 퍼거슨시에서는 시위대가 경찰차를 부수거나 불태우는 등 소요가 점점 더 격렬해지는 모습이었다. 거리 곳곳에 불길이 치솟았으며 군중 일부가 혼란을 틈타 상점을 약탈하는 모습이 전국으로 생중계되는 TV 카메라에 잡혔다. 세인트루이스로 향하는 고속도로는 시위대에 의해 점거됐다.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대배심이 흑인 청년을 총으로 사살한 백인 경관 대런 윌슨(28)에 대해 불기소 결정을 내리자 24일 밤(현지시간) 퍼거슨시는 성난 군중들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곳곳에서 경찰차가 공격당하고 약탈로 상점이 불탔으며 항의 시위는 인근 세인트루이스를 넘어 미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대배심의 불기소 결정이 내려진 직후 발표한 성명에서 “사람들을 다치게 하고 재산을 약탈하는 것은 해답이 아니다”며 자제를 당부했지만 시위대의 분노를 가라앉히지는 못했다. 제이 닉슨 미주리주 주지사도 대배심 결정 공개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어 시위대와 경찰 모두 양측을 존중해달라고 촉구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시위와 약탈이 시내 곳곳에서 벌어지는 가운데 세인트루이스 카운티의 경관 한 명이 총격을 받는 사건도 발생했다. 경찰은 이 총격이 대배심 불기소 결정에 불만을 품은 사람의 소행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경찰은 용의자를 쫓고 있다.
세인트루이스 카운티 경찰은 퍼거슨 경찰서 부근에 모여든 군중을 해산시키기 위해 최루탄을 발사했다. 퍼거슨 시교육청은 휴교령을 내렸고, 주 방위군은 비상사태가 선포된 퍼거슨시 일대의 주요 관공서 방어에 나섰다.
뉴욕,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시애틀 등 주요 대도시에서도 항의시위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뉴욕 할렘 거리는 항의 시위 행렬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뉴욕 타임스퀘어에서는 수백명의 시위대가 ‘흑인들의 생명도 귀중하다’, ‘정의가 없으면 평화도 없다’ 등의 문구가 쓰인 피켓을 들고 유니언스퀘어로 행진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시위자는 경찰을 백인 우월주의 과격단체인 KKK에 비유했으며, 빌 브래튼 뉴욕시 경찰국장에 붉은 액체를 뿌리는 소동도 벌어졌다.
시카고와 로스앤젤레스에서는 20~30대를 주축으로 한 시위대가 도로를 점거하고 시내 중심가로 행진을 벌였다. 시애들 도심에서도 경찰 총격에 숨진 마이클 브라운(18)의 사진을 든 시위대가 가두행진을 벌이다 도로를 점거하고 드러눕기도 했다. 오클랜드에서는 수십명의 시위대가 베이 에어리어 지역의 주요 고속도로 통행을 막기도 했다.
퍼거슨시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소요 사태에 따른 약탈 피해가 발생할까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조원구(68) 세인트루이스 한인회장은 “불이 난 퍼거슨 경찰서 쪽은 한인 상점 밀집구역과는 좀 떨어진 곳”이라며 “현재까지 피해를 본 한인 상점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퍼거슨시에 한인이 운영하는 상점은 20여곳으로 알려졌다. 지난 8월 처음 사태가 터졌을 때 나흘간 폭동이 이어져 한인 상점 3~4곳이 피해를 입기도 했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
흑인 사살한 백인경찰 불기소 결정에 美 퍼거슨시 혼란 가중… 시위 전역 확산 조짐
입력 2014-11-25 1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