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등 국제무대에서 영국과 아르헨티나 축구대표팀이 맞붙을 때면 꼭 ‘포클랜드 전쟁’이란 수식어가 붙곤 한다. 이는 1982년 양국이 아르헨티나 근해의 포클랜드 제도를 두고 전쟁을 벌인 데서 유래한다. 당시 영국군은 아르헨티나군을 74일 만에 제압하고 포클랜드 제도를 탈환해 지금까지 지배하고 있다. 4년 뒤 86년 멕시코 월드컵 8강에서 영국 대표팀과 만난 아르헨티나 대표팀은 마라도나의 ‘신의 손’ 골에 힘입어 승리를 거두고 국가적 자존심을 회복했다. 이후 양국 간 국가대항전은 매번 ‘한·일전’ 이상의 자존심이 걸린 ‘전쟁’으로 여겨진다.
아르헨티나가 문제의 포클랜드 제도 소유권을 주장하는 문구를 모든 대중교통 수단에 표기하도록 법제화했다는 소식이 21일(현지시간) BBC 등 영국언론에 보도됐다. 포클랜드 제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영국 측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아르헨티나 의회는 20일 자국 대중교통 수단과 역에 “말비나스(포클랜드 제도의 스페인어 명칭)는 아르헨티나의 것”(Las Malvinas son Argentinas)이라는 문구를 표기하도록 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의원들은 해당 문구의 표기가 포클랜드에 대한 “부정할 수 없는 우리의 주권을 반영한다”며 만장일치로 찬성했다.
지난 6월에도 아르헨티나 축구대표팀은 월드컵 출정을 앞두고 이 문구가 적힌 현수막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가 국제축구연맹(FIFA)의 징계를 받기도 했다. 법안을 발의한 테레시나 루나 의원은 “이 법은 우리나라에 오는 외국인 뿐만 아니라 역사와 문화, 정체성에 대한 우리 시민의 의식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국의 한 외교소식통은 이번 결정에 대해 “일련의 적대적인 행동이 유감스럽다”며 “문구 표시로 포클랜드 주민들이 스스로 정체성을 결정할 권리를 바꿀 수는 없다”고 말했다. 포클랜드 자치정부는지난해 3월 실시한 영국령 잔류 여부를 주민투표에 붙였고 찬성이 98.8%로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주민들의 대부분이 영국계 이주민이라는 한계가 지적되고 있으며 아르헨티나 역시 주민투표의 법적 효력을 부인하면서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라틴 아메리카와 영·미 유럽의 양국에 대한 지지가 엇갈리는 가운데 유엔은 이 지역을 ‘분쟁지역’으로 규정해 당사자끼리 해결책을 모색하도록 권유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몇 해 전 포클랜드해(Falkland Sea)를 아르헨티나에서 부르는 말비나스해(Malvinas Sea)와 병기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도 했다. 이는 포클랜드가 분쟁지역이라는 측면 이외에 국제수로기구(IHO)의 ‘해양과 바다의 경계’ 책자에 동해(East Sea)를 병기하는 문제와 관련해 영국이 반대 입장을 표명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
남미판 ‘독도는 우리땅’… 아르헨티나 대중교통에 “포클랜드는 우리 땅” 표시 의무화
입력 2014-11-24 1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