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김대중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92)가 북한 방문과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 면담 시점을 놓고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방북 타이밍’에 따라 당초 목적인 인도주의 취지에 정치적 의미가 덧칠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말그대로 남북한 당국 그리고 이 여사 모두 얽혀있는 ‘방북 시점 딜레마’다.
가장 부담스러운 일정은 다음달 17일을 전후해 북한을 다녀오게 되는 경우다. 17일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3주기라서다. 북한은 은근히 이 시점을 택하도록 권유하고 있다.
이 여사 방북 문제를 북한과 협의하기 위해 개성공단에 다녀온 김성재 전 문화부 장관은 23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어떤 시점을 원하느냐’고 북측에 물었더니 ‘계기가 됐을 때 빨리 오면 좋지 않냐’고 되묻더라”고 전했다.
북한 입장에선 2011년 김 위원장 서거 당시 조문했던 이 여사가 3주기에 다시 평양을 찾는 모양새를 만들고 싶어한다. ‘체제 선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특히 유엔이 북한인권 결의안을 처리하면서 국제사회의 ‘외톨이’ 신세가 된 마당에 이 여사가 ‘국상(國喪)’에 호응해주면 활용가치가 크다.
정부 관계자는 “사회주의 국가이면서도 북한은 삼년상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며 “과거 김 위원장도 ‘김일성 주석 3주기’이후 헌법개정을 통한 권력승계를 마무리했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 사망 다음날부터 김 제1비서의 실질적 통치가 이뤄졌던 만큼, 집권 4년차를 홍보하는 데도 이 여사를 동원할 수 있다. 북한은 김 제1비서의 ‘유일 영도체계’와 ‘안정적 통치’를 선전하는데 악용하려 할 것이라는 분석이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 나온다.
3주기 걸림돌을 피하더라도 12월~ 2015년 1월에는 또 다른 북한 정치일정이 걸린다. 1월 1일에는 북한의 향후 1년 대남 정책을 가늠하는 신년사가 발표된다. 김 제1비서의 생일인 1월 8일을 전후해 방북하면 ‘남한의 축하 사절’로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 2월 16일은 김 위원장의 생일인 ‘광명성절’로 북한은 이날을 ‘8대 명절’로 기리며 ‘3대 세습’ 정당성을 옹호하는 이벤트로 활용한다.
이 여사 측은 방북 시점의 정치적 의미와 인도주의라는 당초 방북 목적이 서로 묘하게 ‘불협화음’을 빚으면서 일정짜기에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북한 영유아에게 털모자, 목도리 등 겨울용품을 전달하기로 한 만큼 12월~2015년 1월이 방북의 적기이지만, 정치적 해석이 차단하기 위해서는 각종 기념일을 다 피해야 한다. 그러면 막상 ‘방북 가능한 날’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김대중평화센터 측은 일단 고령인 이 여사 ‘건강’을 최우선 고려한다는 입장이다. 또 정부가 부담스러워하는 날짜는 피한다는 방침도 마련했다. 센터 관계자는 “이 여사가 부담스런 시점을 고집하진 않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올해 안 방북이 힘들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방북 허가권을 쥔 정부도 나름의 딜레마를 겪는다. 정부 일각에서는 “인도주의 지원은 허용하겠다고 해놓고 정치적 의미를 예단해 불허하면 ‘원칙을 깼다’는 지적을 받는다”는 말이 나온다.
유동근 기자 dkyoo@kmib.co.kr
[기획]12월 17일의 의미-이희호 여사의 방북 시점 딜레마
입력 2014-11-23 16: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