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장기간 실거래한 차명계좌 실소유주 인출권 인정

입력 2014-11-23 09:38
장기간 실제로 거래해 온 차명계좌 실소유주가 예금된 돈을 인출했다면 계좌 명의자가 이의를 제기해도 은행이 변상할 의무는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원이 오랜 기간 실질적 거래를 해온 차명계좌주의 인출권한을 인정해준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2부(부장판사 홍이표)는 차명계좌 명의자인 이모(63)씨가 A은행을 상대로 낸 예금채권 반환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고 23일 밝혔다.

이씨는 A은행에 자신의 명의로 된 계좌가 8개 있었다. 이씨는 실소유주인 아버지가 이 계좌에서 1억5500만원을 찾아가자 “명의자는 난데 은행이 허락 없이 아버지에게 돈을 인출해줬다”며 소송을 냈다.

그러나 은행은 해당 계좌에 실제로 돈을 입금하고 비밀번호 등을 관리해온 것은 이씨의 아버지이므로 그를 실소유주로 로 볼 수 있다고 맞섰다. A은행에 이씨의 주민등록증 사본 등 서류를 제시하고 이씨 명의의 계좌를 개설한 것은 그의 아버지였다.

재판부는 “금융실명제법에 따라 실명 확인 절차를 거쳐 예금 계약을 체결한 경우 일반적으로 예금명의자를 계약 당사자로 봐야 한다”면서도 “하지만 이씨 아버지가 민법에서 정한 ‘채권을 행사할 정당한 권한이 있는 준점유자’에 해당하므로 은행이 돈을 반환할 의무는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씨 아버지는 1997년부터 A은행에 아들이나 손자 명의로 계좌를 개설해 돈을 맡겨왔고, 오랜 기간 특정지점과 거래하면서 직원들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며 “이씨 외에 다른 계좌 명의자들은 10여년간 아무런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이씨 아버지는 해당 계좌의 준점유자이고, 은행은 그에게 예금 수령권한이 있는 것으로 믿을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이어 “은행은 이씨 아버지가 제시한 도장과 비밀번호를 확인한 뒤 돈을 인출해줬다”며 “비밀번호까지 일치하면 은행으로서는 예금인출 권한에 대해 의심을 하기 어려운 만큼 인출 과정에서 은행의 과실이 있었다고도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