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의료기관 규제 크게 완화

입력 2014-11-20 22:04
정부가 경제자유구역에 들어서는 외국 의료기관에 대한 규제를 크게 완화했다. 외국 병원 유치 실적이 전무한 상황에서 외국 병원의 투자 심리를 자극해 의료 선진화 발판으로 삼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외국인 환자가 아직 적은 현실에서 무리하게 추진할 경우 ‘산얼병원 사태’가 재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20일 ‘경제자유구역 외국의료기관 개설허가절차 등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은 경제자유구역에 외국 의료기관을 세울 때 외국 의사·치과의사 면허 보유자를 10% 이상 채워야 하는 규정을 삭제했다. 외국 면허 의사로 ‘진료 관련 의사결정기구’ 참여자의 절반 이상을 구성해야하는 의무 기준도 없앴다. 권덕철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무리한 규제 때문에 병원 설립이 어려워 투자자와 산업통상자원부 등에서 완화해 달라는 목소리가 많았다”며 “외국의 우수 의료기관이 들어오면 환자도 늘고 국내 의료기술도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2002년 투자개방형 영리병원 설립 근거를 담은 경제자유구역법(경자법)을 제정한 이후 관련 규제를 계속 풀어왔다. 2005년 외국인뿐 아니라 내국인도 진료를 받을 수 있게 허용했고, 2007년에는 병원 설립 주체를 개인 투자자에서 외국인이 설립한 ‘상법상 법인’으로 확대했다. 2012년 영리병원 개설 절차 등을 담은 시행규칙이 발표돼 본격적인 설립 논의에 들어갔다.

그러나 지난 12년간 유치에 성공한 병원은 하나도 없다. 2005년 인천 송도에 건립 의사를 보였던 뉴욕장로병원은 의사 1인당 연봉으로 20억~30억원을, 입원비는 1일 80만~120만원을 책정했다. 국내에 관련 규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투자자를 찾지 못해 2008년 추진 의사를 포기했다. 미국 존스홉킨스병원 역시 2009년 인천시 등과 양해각서까지 체결했다가 투자자를 구하지 못했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은 “국내 의료가 세계적 수준이고 외국 환자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외국 병원이 들어올 여지는 적다”며 “정부가 현실을 보지 않고 규제만 풀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9월 설립이 무산된 제주도 ‘산얼병원’이 대표적 사례다. 505억원을 투자해 48병상 규모로 만들려던 산얼병원 설립안은 사업 주체인 기업의 부실과 비리가 밝혀지면서 1년6개월여 만에 백지화됐다. 정 국장은 “규제를 줄이다보니 외국 영리병원이 점점 국내 병원처럼 되고 의료 민영화 의심도 커지는 상황”이라며 “지난 12년간 영리병원의 현실성과 적절성이 취약하다는 게 드러난 만큼 관련 사항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