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테러리스트 1] 썸녀랑 약속있는데… 내가 내가… 고자라니 ㅠㅠ

입력 2014-11-20 16:05 수정 2014-11-20 17:58

난해한 패션을 구사해 주위 사람들의 안구를 괴롭히는 이들을 우리는 ‘패션 테러리스트(페테)’라고 부릅니다. 국내외 게시판을 뒤지고 뒤져 그냥 넘어가기 힘들거나 혹은 혼자 보기 아까운 ‘패테’를 엄선해 소개합니다.

‘패션 테러리스트’를 소개하면서 커뮤니티 사이트 ‘오늘의 유머(오유)’의 패션 게시판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오유에서는 패션 테러리스트를 ‘패션 고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여기서 쓰인 고자가 그 고자 맞습니다.

네티즌 사이에서 패션 고자 레전드(전설)로 꼽히는 글을 지난해 9월 29일 오전 1시50분쯤 올라왔습니다. 댓글이 무려 3000개가 달렸습니다. 네티즌들은 글쓴이가 패션 고자에서 벗어나길 간절히 바라며 코디 조언을 시작했습니다.


① ‘내일 썸녀(호감있는 여성)랑 약속 있는데 옷 괜찮은지 봐주세요’라는 제목과 함께 사진 1장이 투척됩니다. 통이 넓은 청바지에 아웃도어 상의를 입고 있네요. 바지색은 물이 거의 빠져 화이트진에 가깝고 상의는 진한 초록색에 검정색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등산가와 힙합 뮤지션을 동시에 보는 것 같다”는 촌평과 함께 네티즌의 깨알 같은 조언이 이어집니다.



② 그는 티셔츠만 갈아입고 다시 나타났습니다.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의 오렌지색 반팔 셔츠네요. 유명 브랜드라고 다 좋은 건 아니라는 예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네요. 네티즌들은 “당장 벗어버려”라고 혼냅니다.



③ 그는 다른 바지를 꺼내 입습니다. 하지만 통이 넓긴 마찬가지예요. 청바지 워싱은 제멋대로 들어가 얼룩덜룩하고, 심지어 7부 길이예요. 상태가 더 악화됐습니다. 네티즌들은 말합니다. “강동원이나 원빈, 현빈 닮았으면 그냥 이렇게 입어도 나가도 될 거 같은데. 그게 아니라면 바지 좀 사러가세요.”



④ 그는 셔츠를 입어보란 누군가의 조언에 셔츠를 입고 나타납니다. 7부 바지에 푸른색 계열 셔츠를 걸친 겁니다. 셔츠 안에는 오렌지색 티셔츠가 살짝 보이기까지 해요. 어울릴 리가 없죠. 네티즌들은 “제발 바지만 갈아입어”라고 절규하기 시작합니다.



⑤ 답답했는지 그는 서랍 속 바지를 몽땅 올립니다. 모두 통이 넓네요. 네티즌들은 이 상담이 길어질 것을 예상하곤 야식 사진을 올리기 시작합니다. “밤 샐 때 먹으면 좋은 찐 옥수수, 치킨 팔아요.”



⑥ 그는 댓글에서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더니 완전히 새로운 옷을 선보입니다. 통이 넓은 진청 바지에 반팔 흰색 셔츠를 코디했어요. 바지 아랫단을 접어 올려 롤업 스타일을 선보였지만 너무 많이 접어 네티즌들을 경악시켰습니다. 질책이 이어집니다. “우리 아버지 같아요.” “이러려면 나가지 마세요.”



⑦ 바지 지적이 이어지자 그는 청색 계열의 딱 붙는 바지를 입고 등장했습니다. 처음부터 이걸 입지 그랬어요. 그런데 말이죠. 그 외 아이템이 함정입니다. 펀칭이 요란스러운 가죽 벨트와 진 노란색 크루넥 셔츠(일명 맨투맨 티셔츠)를 입었습니다.



⑧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그는 다시 푸른색 계열 셔츠를 갈아입습니다. 일명 ‘청청 패션’을 구사한 건데요. 웬만한 연예인도 오징어로 만든다는 그 청청 패션을 말입니다. 네티즌은 혼란에 빠집니다.



⑨ 셔츠 아랫단을 바지 안에 넣고 소매를 접어 봐도 이상하긴 매한가지입니다. 자정을 넘겨 시작된 댓글 코디는 오전 2시를 훌쩍 넘기고 맙니다. 한 네티즌은 말합니다. “너무 궁금해서 잠을 못자겠어요.”



⑩ 입은 옷은 그대로이지만 그는 조금 변화를 주어 스타일을 깔끔하게 정리했습니다. 기존 청청 패션이지만 셔츠 아랫단을 바지에 넣지 않고 꺼내 입었고 소매를 좀 더 세련되게 접었더니 스타일이 훨씬 좋아졌습니다. 네티즌들도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며 뿌듯해 합니다.

네티즌 누나 형들은 “신발은 뭘 신을거냐”며 살뜰하게 걱정하며 댓글 코디를 훈훈하게 마무리를 짓습니다. 그날 오후 늦게 “님들 덕에 썸녀를 잘 만나고 왔다”라는 후기가 올라와 적지 않은 부러움을 사기도 했죠.

‘전설의 패션 고자’ 속 주인공이 장난을 친 건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네티즌들은 “장난치곤 너무 치밀하다. 10년 전 옷장에 자물쇠를 걸었다 다시 연 것 같다”며 혀를 내둘렀습니다.

오빠가 있다는 한 네티즌은 밤 잠 설쳐가며 ‘깨알 조언’을 해준 네티즌 ‘횽아’들의 훈훈함에 감동했다 말합니다.

“오유하면서 운적 처음이네요. 우리 친오빠도 모범생이긴 하지만 글쓴이님처럼 입으려고 하면 내가 가서 패 줬는데 ‘니 생각만 하지 말고 다른 사람 눈을 생각하라’고 말이죠. 여동생 없어요? 그래도 많이 발전해서 다행이네요. 앞으로 오유분들의 조언을 마음에 새기면서 썸녀 챙기는 마음도 중요하지만 님을 더 사랑하고 아껴주셨음 좋겠어요. 파이팅입니다.”

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