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아늑한 오솔길, 계곡 따라 외씨버선 수놓네… 영월 김삿갓문학길

입력 2014-11-18 21:04 수정 2014-11-18 21:22

가볍게 내딛은 발이 탄력을 받는다. 굽이굽이 또다른 풍광이 고개를 드니 산을 처음 타는 아이도, 트레킹 마니아도 자연 앞에 흡족하긴 매한가지. 골을 가르는 물살에 마음을 열어젖힌다.

단종의 한을 온몸으로 끌어안은 땅, 만인의 동강이 자리한 곳 영월에 외씨버선길이 천혜의 수(繡)를 더했다. 대표적 청정지역으로 꼽히는 청송과 영양, 봉화, 영월을 도는 외씨버선길은 이채로운 4색(色) 매력이 어우러진 240km 트레일이다. 총 13개 구간 중 12번째 길인 김삿갓문학길이 김삿갓의 걸음걸음을 그리며 마지막 낙엽 세례를 퍼붓는다.

영월여행 중 빼놓을 수 없는 김삿갓문학관에서 서민의 애환을 읊은 김삿갓을 마주하고 길에 오른다. 여유가 있다면 문학관 지척에 있는 조선민화박물관마저 들러보는 것도 좋겠다. 잔잔한 계곡물 위 섶다리가 풍성한 여정의 시작을 알린다. 김삿갓문학길은 김삿갓계곡을 거쳐 와석리 마을길을 지나 김삿갓면사무소까지 이어지는 12.4km 구간. 청량한 숲길에 취해 넋 놓고 거닐다 보면 5시간이 모자랄 수 있다.

문학관에서 꽃비농원까지 4km는 두 명이 나란히 걷기엔 다소 좁은 길이 이어진다. 형형색색 겹겹이 쌓인 낙엽들은 그대로 길이 됐다. 온전한 흙길이 펼쳐지는가 하면 뚝뚝 잘린 돌무더기길이 나오고, 땅 위로 모습을 드러낸 나무뿌리도 밟으며 오르막과 내리막을 거듭한다. 하지만 급경사가 없어 무리 없는 길, 지친 기색을 보이면 핀잔 듣기 좋다. 물푸레나무, 참나무, 낙엽송, 잣나무 그리고 산죽 군락 사이를 거닐며 맡는 흙내음이 진하다.

10리 되는 길에 골짜기마다 구전(口傳)도 그리 많다. 여름에는 차갑던 계곡물이 겨울엔 얼지 않고 더운 기운이 난다는 참산내기, 새색시를 데려오던 가마꾼들이 변을 당했다는 각시배리, 뽕잎을 따러 나선 사내가 거대한 구렁이를 만난 구진골 이야기가 흥을 돋운다.

꽃비농원을 지나 든돌을 한번 쓰다듬은 후라면 이내 작은 현수교가 보인다. 묵산미술박물관 입구다. 박물관은 정선, 김홍도, 이중섭의 작품을 비롯해 조선시대와 근현대 미술품을 고루 갖췄다. 자연목으로 무당벌레를 만들거나 자화상을 그리는 체험도 해볼 만 하다.

외씨버선길이 다시 계곡을 따른다. 나무데크로 조성한 계단과 다리가 어색함 없이 제 몫을 한다. 물길 하나를 놓고 문명과 원시를 넘나들어 본다. 깊이 들어갈수록 숨도 깊어진다. 촘촘히 선 나무는 더 높이 솟는다. 산 중턱을 넘고 발길을 느슨하게 풀며 만난 마을길이 참 호젓하다. 알알이 쏟아낸 곡식을 다 내어주고 농부의 밭은 다시 숨을 고른다.

곡동교에 다다르자 김삿갓계곡 하류에 떠 있는 섬 하나가 눈에 띈다. 너른 마당만한 섬은 여름철이면 땀을 식히려 모여든 피서객들 차지다. 문학길 전 구간이 부담스럽다면 오전에 곡동교를 끝으로 김삿갓계곡길(7.2km)을 돌아보고 오후엔 영월의 명승지를 찾는 것도 좋을 듯하다. 하루 묵을 요량이면 문학관에서 와석1리 마을회관까지 늘어선 12개의 크고 작은 민박집 문을 두드려볼 수 있다. 꽃비농원이나 묵산미술관도 방을 내준다. 운이 좋으면 영월객주를 통해 민박 할인권을 구할 수도 있다.

고즈넉한 와석리 마을에 안기니 이제 남은 거리는 4km 남짓. 살짝 풀린 다리에 힘을 실어야 한다. 가랭이봉을 잇는 울창한 숲길 가운데 제법 경사진 구간이 나타난다. 봉우리에 선 발밑으로 옥동천이 흐르면 숲속길은 더없이 아늑하다. 복원된 옛길 곳곳에서 동네 사람들의 손길이 배어나고, 겨울 길목에서 내내 함께한 산의 온기가 은근한 여운으로 감돈다.

숲길을 나와 도로에 닿으면 곧 종점인 김삿갓면사무소다. 김삿갓문학관에 차를 두었다면 하루 다섯 번(오전 6시25분, 8시30분, 11시30분, 오후 2시20분, 6시40분) 면사무소를 통하는 버스를 잡아타고 돌아갈 수 있다. 김삿갓문학길에 대한 소소한 얘깃거리는 외씨버선길 영월객주(033-374-6830)에서 얼마든 청할 수 있다.

김성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