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룡해 북한 노동당 비서의 러시아 방문 중 고장을 일으킨 특별기는 김정은 당 제1비서가 보유한 3대의 전용기 중 1대인 것으로 18일 알려졌다. 북한은 특별기까지 편성하며 러시아 특사에 잔뜩 공을 들였지만 ‘최고 존엄’의 전용기가 ‘고물’이었다는 망신만 당한 셈이다.
당초 정보당국이 파악했던 최 비서의 일정은 17일 오전 10시 평양 순안공항을 출발해 오후 8시(현지시간 오후 2시)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에 도착하는 순서였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마치고 귀국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고려한 일정이었다. 특사단이 러시아에 도착한 다음날 푸틴 대통령을 만나 김 제1비서의 친서를 전달할 것이란 추론이 나왔다.
그러나 전용기는 공항을 출발한 지 2시간이 채 안돼 중국 상공에서 평양으로 돌아왔다. 낮 12시 최 비서를 태운 비행기가 회항한 사실이 우리 군의 레이더에 실시간으로 포착됐다. 격납고에서 수리를 마친 뒤 이륙 준비가 완료된 시간은 오후 8시였다.
정보당국은 최 비서가 회항 후 재출발까지 8시간 동안 공항에 머물렀는지에 대해서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했다. 특사단은 결국 한 나절을 꼬박 허비한 뒤 같은 비행기를 타고 18일 오전 0시(우리시간 오전 6시) 이후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19일 고려항공 직항편까지 포기하며 택한 ‘특별한’ 일정은 별무소득이 돼 버린 것이다.
오히려 최고 지도자의 전용기에 큰 문제가 있다는 점만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는 역효과가 났다. 이 특별기는 일류신(Ilyushin) IL-62로 1960년대 구(舊)소련이 제작한 것을 20년 전 북한이 구매해 ‘김정은 전용기’로 개조했다. 지난달 4일 최 비서 등 ‘3인방’이 남한으로 타고 온 것과 같은 기종으로 총 3대의 전용기 중 하나다. 군 관계자는 “정비시간으로 헤아려 볼 때 심각한 고장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조선중앙통신은 특사단 출발상황을 보도했지만, 러시아 도착은 알리지 않고 있다.
하지만 ‘회항’문제를 지나치게 과장할 필요는 없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정부 관계자는 “제임스 클래퍼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탔던 미군 비행기도 고장 때문에 괌에서 하루 반나절을 허비했다”고 지적했다.
최 비서 일행의 모스크바 도착이 지연되면서 원래 예정됐던 푸틴 대통령과의 면담도 미지수가 됐다는 관측이다. 크렘린 공보실은 “일단 18일 일정은 없다”는 입장이다. 우리 정부는 옛 사회주의권 국가의 특성상 면담이 갑자기 성사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노광일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관련 사항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며 “북한이 적극적인 외교행보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북한의 상황이 고립무원이라는 방증”이라고 평가했다.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무 차관은 지난 15일 “핵 문제, 한반도의 비핵화 전망과 넓은 의미의 동북아 지역안보 문제, 북·러 간 양자관계 등이 논의될 예정”이라며 특사단과 논의할 3가지 의제를 밝혔다. 정성장 세종문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양측이 정상회담 추진과 함께 6자회담 재개 조건을 협의할 수 있다”며 “북·중 공조의 틀이 북·러 공조로 바뀌는 역사적 시점”이라고 분석했다.
유동근 기자 dkyoo@kmib.co.kr
[단독]망신당한 최룡해 특별기-일류신 IL-62인 김정은 전용기
입력 2014-11-18 17:11 수정 2014-11-18 1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