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기구한 결혼 이주여성…시아버지에게 성폭행 당하고도 이혼판결 “왜?”

입력 2014-11-17 16:51

시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했음에도 결혼 전 출산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주여성이 결혼 취소 판결을 받았다. 이에 여성단체들이 선처를 요청하고 나섰다.

17일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와 전북여성단체연합에 따르면 베트남 출신 이주여성 A씨(24)는 결혼 전 본국에서 겪은 성폭행에 의한 출산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한국 남자와 혼인한 사실이 드러나 지난 6월 1심에서 '혼인 취소 및 위자료 지급' 판결을 받았다.

이에 대해 여성단체들은 이날 항소심 재판부에 이주여성을 포함한 2419명의 탄원서를 제출하면서 "중복된 성폭력 피해자를 냉정하게 대우하는 것은 사회통념과 정의로운 법의 정신과도 합치되지 않는다"며 A씨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포용해달라고 호소했다.

여성단체들은 "지적장애가 있는 남편과 결혼해 힘든 생활을 한데다 시아버지에게 지속적인 성추행을 당하다 결국 성폭행까지 당한 이주여성에게 결혼 취소 판결은 가혹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A씨는 13세 때인 2003년 베트남에서 의문의 납치를 당한 후 성폭행으로 출산을 했고, 이후 친정에서도 버림받은 채 가해 남성을 피해 도망다녔다.

그러던 중 지난해 한 중개업체를 통해 지적장애가 있는 한국 남자와 결혼했다. A씨는 제대로 된 가정생활을 못한 채 시아버지에게 시달리다 성폭행을 당하는 등 삶이 순탄치 못했다.

시아버지는 성폭행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시아버지에 대한 형사재판 과정에서 결혼 전 출산 사실이 알려지자 남편은 A씨를 상대로 혼인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법원은 "A씨가 현 남편과 결혼하기 전 베트남에서 있었던 출산 사실을 고지하지 않은 점이 인정된다"며 결혼 취소와 함께 남편에게 위자료 8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1심을 맡았던 전주지법 가사재판부는 "A씨가 출산경력을 숨긴 부분이 있어 법리적으로 부득이하게 결혼무효 판결을 내렸지만 소송비용 책임은 70%만 물었다"며 시아버지에게 성폭행당한 부분 등은 항소심에서 고려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영경 기자 yk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