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복남 한국문화관광해설사(전북)
늦가을 단풍이 한창이고, 탐방 인파도 절정인 8일 오후 선운사 만세루에서는 참배객들이 차를 마시면서 경내 경치를 감상하고 있다. “이 만세루를 보시면 온전한 기둥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 기둥들은 모두 절집 건자재인 소나무가 부족했던 탓에 여기 저기 쓰던 나무나 자투리 자재를 재활용해서 만들었어요. 심지어 기둥 아래와 위의 굵기가 다른 기둥도 있습니다.” 11년째 문화관광해설사로 일하는 강복남(여·사진)씨가 낭랑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자 강씨와 기자 일행 외에도 주변 사람들이 모두 다가와 귀를 기울인다. 귀동냥을 참지 못하게 만드는 그야말로 뛰어난 해설사임에 틀림없다.
강씨는 선운사 주변 차밭을 소개하면서 차나무는 실화상봉수(實花相逢樹)라고 말했다. “차나무에 찔레꽃처럼 흰 꽃이 피어 있는 10월에 자세히 보면 지난해에 맺힌 열매가 아직 익지 않은 채 녹색으로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열매가 꽃을 만난다는 뜻의 실화상봉수라고 합니다.” 강씨는 “풍천장어, 복분자주, 작설차를 합쳐서 선운 3미(味)라고 하는데 특히 이른 봄 차 잎이 참새 혀끝만 할 때 딴 잎을 우려낸 작설차를 복분자주 마신 다음 날 아침 마셔야 선운3미의 경지에 빠집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차나무는 키가 작지만 곧게 자라는 만큼 뿌리도 깊게 내립니다. 고창에서 딸을 시집보낼 때 차 열매를 가재도구에 넣어 보내는 것도 차나무처럼 흔들림 없이 잘 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고 설명했다.
가을 단풍 구경을 하러 과거에는 내장사에 더 많은 인파가 몰렸다. 그러나 서해안 고속도로가 개통된 이후 수도권에서 전반적으로 선운사가 더 가까워졌다. 강씨는 “선운산 일대는 학생들 소풍이나 수학여행, 그리고 직장인 단합대회의 최장 당일치기 코스로 각광받고 있습니다”고 말했다. 선운사는 선운산 톨게이트에서 가까운데다 도로도 넓어 교통체증이 없는 반면 내장사와 백양사 진입로는 단풍피크 때 차들이 2시간씩 꼼짝 못하기 일쑤다. 그래서 이제 전북지역 탐방객들은 단풍 감상을 위해 선운사로, 또한 고창읍의 문수사로 몰리는 경향이 있다.
고창이 고향이고, 고창 읍내에서 살고 있는 강씨는 “애향심이 없다면 자원봉사에 가까운 문화관광해설사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선운사 일대에서 주로 활동하는 만큼 선운사의 모든 것을 다 사랑하고, 그것들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 고창문인협회 회원인 강씨는 선운사 입구의 천연기념물인 늘 푸른 나무 송악에 대해 시를 쓰기도 했다. “송악은 남해안과 주변 섬들, 제주도 등 에 주로 서식하는 덩굴성 식물입니다. 따라서 나무 줄기를 감고 올라가며 자랍니다. 그러나 이곳의 송악이 독특한 것은 뿌리가 뭉쳐지듯 불거져 나와 바위에 압착해 살고 있다는 점입니다.”
강씨는 문화재청장을 지낸 유홍준 교수나 고위관료 등의 귀빈들을 직접 안내한 경험도 많다. 고창군 전체가 유네스코의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됐다는 것을 그들과 함께 기뻐했다. 그렇지만 아쉬울 때도 있다, “선운사 경내와 주변의 노거수 가운데 극히 일부지만, 증개축 등을 통해 벌채되는 경우가 있다는 게 안타깝습니다. 주지스님마다 보전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다른 것 같은데 옛 모습을 좋게 기억하는 사람들 입장도 반영됐으면 합니다.”
고창=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 / 사진=구성찬 기자 ichthus@kmib.co.kr
[임항 논설위원의 ‘그 숲길 다시 가보니’ 인터뷰] 향토애로 빚어내는 명품 문화해설
입력 2014-11-16 2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