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BI, 마틴 루터 킹 목사에게 자살 종용 편지 보내”

입력 2014-11-17 09:30

“한 장의 종이는 세월의 흔적을 담은 듯 누렇게 변해있었다. 오타와 맞춤법에도 맞지 않는 글이었다. 한 사람을 비방하는 섬뜩한 단어를 사용한 악의적인 말로 가득했다. 첫 단어는 ‘악마’였다. 내용에는 ‘evil’이라는 단어가 6번이나 등장한다. 편지 받는 사람을 사기꾼, 악마, 잔인한 놈, 간통 같은 비도덕적 행위를 일삼는 사람으로 비난하고 있다.”

비벌리 게이지 예일대 미국역사학 교수가 최근 뉴욕타임스(NYT) 일요판에 FBI로 추정되는 단체가 지난 1964년 마틴 루터 킹 목사에게 그를 비난하고 자살하도록 유도하는 익명의 편지를 보냈다며 원본을 공개했다.

편지에는 킹 목사를 비방하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킹 목사의 부정행위를 녹음한 오디오 테이프가 있다는 듯 “누구도 진실에서 벗어날 순 없다. 당신 같은 사기꾼이라도 마찬가지다. 너는 이제 끝났다”라면서 “성(性)적으로 미쳐있는 당신의 귀로 편지 동봉물을 잘 들어봐라”고 적었다.

이와 함께 “당신의 더럽고 비정상적이며 사기로 가득찬 자아를 국민 앞에 벌거벗길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모든 미국인이 당신이 사악하고 비정상적 짐승임을 알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편지는 34일의 기한을 주고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단 한 가지다. 당신도 그게 무엇인지 알 것”이라며 자살을 종용하는 듯한 말로 마무리됐다.

게이지 교수는 “킹 목사가 이 편지를 보낸 사람이 FBI라고 확신했으며 주변 친구들에게 자신이 살해당할 수 있다고 조용히 알렸다”면서 당시 국장이었던 존 에드거 후버를 이 편지의 배후로 지목했다.

당시 FBI는 킹 목사의 사생활을 캐기 위해 킹 목사가 머무는 호텔방에 도청장치를 설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1960년대 초 후버 국장은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아지고 있던 킹 목사를 공개 비난하는 등 악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1964년 11월 한 기자회견장에서는 킹 목사를 “미국에서 가장 악명 높은 거짓말쟁이”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게이지 교수는 후버 국장이 그 뒤 윌리엄 설리번 국장보에게 익명 편지 작성을 지시했다면서 이 편지가 “후버 국장 시기 미친 듯이 날뛰었던 FBI를 보여주는 가장 악명 높고 당혹스러운 사례”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다행히 1964년 언론은 현재보다 훨씬 신중했다”며 “킹 목사에 대한 후버 국장의 공작은 대부분 실패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 정보기관은 국가안보에 저해되지 않는다면 정보를 사용하진 않지만 여전히 GPS와 전화, 이메일 등으로 우리의 사생활을 염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재우 선임기자 jw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