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사장’ 직원 내세워 도매상 행세한 대기업 꼼수 결국…

입력 2014-11-14 14:46
유통분야 A대기업이 중소기업 업종에 진출한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소속 직원을 ‘바지 사장’으로 내세워 ‘꼼수 영업’을 해 온 사실이 형사 재판에서 드러났다.

A사는 2004년부터 가격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산지에서 직접 청과를 구매했다. 회사 측은 산지 직거래팀 직원 유모(46)씨에게 ‘과일 구매 시 회사와 무관한 개인업자처럼 행동하라’고 지시했다. 대기업이 중소기업 업종에 진출한다는 비난을 피하려는 의도에서였다. 대기업이라는 이유로 농민들이 과일 값을 비싸게 요구하는 것을 피하려는 이유도 있었다.

A사는 유씨에게 과일 구매비 등으로 모두 208억원을 지급했다. 유씨는 개인 도매상인 것처럼 행세하며 제주도 감귤과 안동 사과를 구입해 회사에 공급했다. 그는 회사 측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컨테이너 박스에서 생활하면서 경비를 최소화하는 등 헌신적으로 일했다고 한다. 2007년부터는 과일 공급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별도의 선과장(과일을 선별하여 포장하는 장소)을 설립했다. 선과장은 모두 419억원 매출을 올리는 성과를 냈다.

5년간 이런 방식으로 영업한 A사는 2009년 선과장을 회사 자산으로 편입하기로 했다. 유씨는 본사로 복귀하고 진급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회사 측은 오히려 “새로운 과일 산지를 개척하라”고 지시했다. 유씨는 회사에 항의하며 자신과 부인 명의로 된 선과장과 예금통장을 회사에 돌려주지 않았다. 이에 회사는 2011년 6월 유씨를 업무상 횡령 혐의로 고소했다. 1심 법원은 “선과장이 회사 자금으로 운영됐고, 유씨의 개인 재산은 투입되지 않았다”며 유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5부(부장판사 김상준)는 원심을 뒤집고 유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14일 밝혔다. 재판부는 “선과장 설비와 통장에는 유씨가 노력을 통해 얻은 이익이 함께 들어있다”고 판단했다. 유씨가 반환을 거부한 것은 그동안의 공로에 대한 보상이나 비용을 정산받기 위해 한 행동으로 볼 수 있어 횡령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선과장 반환을 거부한) 유씨의 태도가 사회통념상 정당한 이유가 없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