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북한 ICC 제소 가능성 낮아졌다

입력 2014-11-13 17:25

오는 18일(현지시간) 유엔총회에서 의결될 예정인 유엔 북한 인권 결의안에 ‘국제형사재판소(ICC) 회부’ 문구가 삭제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북한이 제3세계권 국가들을 상대로 전방위 외교전을 펼친 데 이어 이 문구를 삭제한 수정안에 대한 지지를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ICC 제소가 물건너간다는 의미다.

통일부 관계자는 13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인권결의안 원안의 ‘북한 정부를 ICC에 회부하는 것을 안보리가 검토하도록 권고한다’는 대목을 빼기 위해 북한은 기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전통적인 북한 우방인 중·러가 유엔총회에서 결의안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더라도 안보리 검토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견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두 강대국이 적극적으로 나서면 원안 수정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이라며 “이 문구를 아예 들어내거나 최대한 두루뭉술하게 바꾸려는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원안의 핵심은 북한 인권 문제의 최종 책임자가 바로 김정은 정권이며 이를 회원국 결의로 명확하게 해두자는 것”이라며 “ICC 회부가 삭제된 수정안 통과는 결의안의 진의를 다 빼는 거나 다름없다”고 덧붙였다.

북한이 케네스 배와 매슈 밀러 등 억류 미국인 2명을 전격 석방한 것도 인권결의안 원안 처리를 강력히 지지해온 미국의 마음을 돌리려는 계산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북한 외교관들에게서 다급함이 느껴질 정도”라며 “ICC 회부 대상이 북한 정부로 규정돼 있지만 결국 최고 지도자를 겨냥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저지하지 못하면 처단 대상이 될 것이라는 분위기가 엿보인다”고 했다. 강석주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의 9월 유럽연합(EU) 방문, 11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아프리카 방문 등도 국제사회에 ‘한 표’를 호소하는 행보로 풀이된다.

이미 외교무대에서 친북 행보를 이어온 쿠바는 12일 북한 인권결의안에서 ICC 회부 구절을 삭제한 수정안을 유엔에 제출했다. 쿠바는 “ICC 회부 대신 ‘대화를 통해서 북한 인권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란 문구를 삽입했다. 또 베네수엘라, 시리아, 일부 아프리카 국가 등은 원안과 수정안 비교를 통해 제3의 인권결의안 작성 협상을 제안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일단 우리 정부는 북한의 최근 외교 행보와 억류 미국인 석방 등이 자칫 국제사회에 온정주의적 반응을 불러와 원안 처리에 지장이 올 수 있다는 점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자칫 원안 통과가 막힐 경우 북한 인권 문제를 유엔 안보리 의제로 설정하려는 정부의 목표가 무산될 수 있어서다.

외교부는 현재로선 수정안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지난 2년간 채택된 북한 인권 관련 결의안들도 압도적으로 지지를 받았다는 점을 이유를 들고 있다. 그러나 수정안 채택 여부를 떠나 북한의 전방위 외교전을 펼치고 있는 데 비해 우리 외교부는 적극적인 외교력을 보이지 못했다는 비판에선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유동근 기자 dk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