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모(56·자영업)씨는 얼마 전부터 술자리가 편치 않다. 30~40대에는 두주불사(斗酒不辭)라는 소리까지 듣곤 했는데, 요즘은 술이 약해진 것이 확연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한창 때는 맥주 5000㏄ 이상을 마시곤 했는데, 요즘은 2000㏄도 버겁다. 또 젊을 때는 맥주를 마시기 시작한 뒤 10~15분쯤부터 화장실을 들락거리기 시작했는데, 요즘은 술자리가 파할 때까지 한번 갈까 말까 한다.
양씨는 소변을 만드는 콩팥에 이상이 생겨 알코올을 소변으로 잘 배출하지 못하게 됐고 덩달아 술도 약해진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된다.
맥주 마실 때 화장실 자주 가는 사람은 건강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맥주 5000cc 마시면 그 많은 물 어디로 가나?=인체의 혈액 총량은 약 5L. 이중 적혈구, 백혈구 등을 제외한 순수한 물은 약 2.5ℓ이다. 그런데 술을 잘 마시는 사람 중에는 한 자리에서 맥주를 5000㏄ 이상 마시면 평소 혈액 속에 든 물의 두 배쯤 되는 수분이 공급된다. 인체는 이렇게 많은 물을 오래 담아둘 수 없다. 최대한 빨리 소변으로 배출해야 한다.
양쪽 콩팥이 하루에 거르는 혈액의 총량은 180ℓ로 시간당 평균 7.5ℓ이다. 이중 1%인 75㎖가 1시간 동안 만들어지는 소변의 양이다. 하루에 만들어지는 소변의 총량은 180ℓ의 1%인 1.8ℓ쯤 된다(성인 남성 기준).
그런데 2~3시간 안에 맥주 5000㏄를 마시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대부분의 영양 성분은 장(腸)에서 흡수되지만, 물과 알코올은 위(胃)에서부터 흡수되기 시작한다. 위에서 물이 흡수돼 혈중 수분이 많아지고, 혈중 알코올 농도가 올라가면 이 신호가 뇌하수체에 전달된다.
뇌하수체 후엽에서는 ‘항이뇨호르몬’이 꾸준히 분비돼 소변을 아무 때나 보지 않도록 조절한다. 그런데 혈중 수분 양이 늘고 알코올 농도가 올라가면 ‘항이뇨호르몬’ 분비가 억제된다. 그러면 소변을 보고 싶어진다.
몸 안에 과도하게 들어온 물을 밖으로 내보내려는 시스템이 가동되는 것. 알코올도 항이뇨호르몬 분비를 억제한다. 맥주의 물과 알코올 두 가지가 소변을 많이 보게 작용한다.
소변을 너무 많이 보는 질병이 있는데 이를 ‘요붕증’이라고 한다. 심하면 하루 소변 양이 30ℓ에 이른다. 1시간에 평균 1.25ℓ나 된다.
맥주 5000㏄를 마시면 인체는 일시적으로 요붕증과 비슷한 상태가 된다. 몸에 5ℓ이상 들어온 물을 소변으로 처리하려면 시간당 1.25ℓ씩 소변을 봐도 4시간이나 걸린다. 만약 이렇게 소변을 배출하지 않으면, 많은 양의 맥주를 마시기 어렵다. ‘뻔질나게’ 화장실을 들락거려야 한다.
물과 알코올이 몸 안에 머물러 있는 상태에서는 술을 많이 마실 수 없다. 따라서 맥주 마실 때 화장실에 자주 가는 사람이 술을 처리하는 능력이 좋다고 볼 수 있다. 술이 세다.
◇맥주 마실 때 화장실 자주 가면 위-콩팥 대사 기능 좋아=그렇다면 맥주 마실 때 화장실에 자주 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중 누가 더 건강할까?
젊을 때 맥주를 많이 마시던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특별한 원인이 없는데도 주량이 줄어들었다면 위와 콩팥 기능이 감소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알코올과 물은 위에서도 흡수되므로 위가 튼튼한 사람이 알코올과 물 흡수가 더 활발하다. 나이 들면 대개 위 기능이 저하되는데, 개인 별로 편차가 있다.
콩팥 기능도 감소한다. 아기 때 콩팥 1개당 콩팥 단위가 100만 개이지만, 30대가 되면 80만개, 60대에는 60만 개로 줄어든다. 이는 콩팥병과 같은 질환이 없어도 나타나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다만 이는 일반적인 현상일 뿐, 개인에 따라 나이 먹어도 콩팥 기능이 많이 떨어지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콩팥 단위가 감소하면, 콩팥에서 소변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줄어든다. 만약 콩팥이 시간당 1.25ℓ나 되는 많은 소변을 만들어낼 정도로 튼튼하지 않다면 맥주를 한 자리에서 5000㏄까지 마시기 어렵다.
김성권 서울K내과 원장은 “술이 약하다고 해서 위나 콩팥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며 “다만 젊을 때 술을 잘 마셨던 사람이 나이 들면서 술이 약해졌다면 위, 콩팥 등의 기능 저하에 의한 것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과음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콩팥병 진단을 받은 사람은 콩팥의 기능이 약해져 있으므로 과음은 절대 금물이다. 이런 사람이 과음하면 콩팥은 물론 위, 간 등에 여러 장기에 심각한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술자리에서 요의(尿意)가 느껴지면 화장실에 자주 가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
맥주 마시고 화장실 들락날락 … 좋은 걸까 안 좋은 걸까
입력 2014-11-13 14: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