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쯤, 대학 교수 한 분이 자신의 삶의 깊은 고민을 내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나는 얘기를 듣고 이것이 영적인 문제라고 생각했다. 이성적 접근보다는 영적인 각도에서 생각하고 해결해 보자고 이야기했다.
교수는 내 말을 받아들였다.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를 시작으로, 좋은 교회를 선정해 신앙생활을 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났다. 그렇게 시작된 신앙생활을 이어가던 중, 어려운 문제가 스스로 풀리는 것을 발견한 교수는 깜짝 놀랐다. 게다가 교회에 심하게 반대하던 그의 부모님도 스스로 신앙을 찾고 계신 것을 보고는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마침내 좋은 교회를 찾았고 6년 째 착실한 성도로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물론, 부인도 자녀들도 모두 신앙인이 되었다.
어려운 가정의 문제가 온가족을 구원한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본래 학문적인 뒷받침을 갖추고 계신 분이라, 성경 공부도 아주 깊이 하고 있다. 60년 넘도록 신앙생활을 해온 나보다 오히려 성경을 더 깊이 공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은 어떤 조그마한 시련을 통해서 우리를 부르신다. 그때 하나님께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한 것이 결국 전도라는 열매로 연결되었고, 마침내 그 집안이 모두 구원받는 큰 경사가 난 것이다. 우리가 전도를 목적으로 아주 큰 노력을 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예정한 사람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구원하고 계시다는 것을 실증하는 사건이었다.
우연한 일, 그리고 우연한 기회임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히 전달할 수만 있다면, 전도는 스스로 열매를 맺게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식인을 전도하는 것은 비록 어려운 일이지만, 그리스도의 향기를 성령의 인도로 진실 되게 전한다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교인 수를 늘리기 위한 전도도 있지만, 그것은 참된 전도에 비해 의미가 적은 것 같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 한 사람의 영혼만큼은 반드시 구하겠다”는 마음으로 전도를 하면 그 기쁨이 더욱 크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행하는 전도에는 깊이가 있다.
교회는 하나님과 종교 생활 간의 관계를 설정하는 데에는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생활 속에서 전도하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삶 속에 전파하여 어린 양들을 교회로 돌아오게 하는 것은 우리 성도들의 몫이다.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을 찬양케 하라”는 사도 바울의 말씀은 우리에게 주는 큰 교훈이다.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내 삶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을 찾게 한다면, 그보다 더 하나님께 큰 기쁨을 드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오히려 나 때문에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일도 많이 하고 있는 것 같다. 나 자신을 돌아보면 하나님께 부끄러울 뿐이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겠다고 기도해 보지만, 정작 하루가 다 지났을 때면 별로 한 일이 없다는 회개 기도밖에 드리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늘 불만이다.
참, 또 한 가지 축복할 일이 있다. 앞서 언급한 교수의 딸이 교회에 열심히 나가다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신랑 될 친구가 스스로 먼저 교회에 나가고 싶다고 해서 몇 달 째 같이 나간다고 한다. 교수의 사위 자랑이 대단하다.
아직 결혼식도 치르기 전인데도 무척 마음에 드는 사윗감인 모양이다. 신랑 될 집은 부산에 있는데 교회에는 전혀 나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장남이 교회에 나가기 시작하면, 이 교수의 집과 마찬가지로 부모님도 교회에 등록하지 않겠느냐며 기대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자녀들도 물론 하나님의 자녀로 성장할 것이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역사는 오직 감탄하고 찬양할 뿐이다.
이렇게 구원의 열매가 점차 커지면, 온 나라와 다른 나라에 금세 퍼져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충분히 축복 받은 결혼식이지만, 하나님의 더 큰 축복이 있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이렇게 예비 된 자들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시는 성령의 은사에 감사드린다.
할렐루야! 아멘!
한국유나이트문화재단 이사장, 갈렙바이블아카데미 이사장
[강덕영 장로 칼럼-종교인과 신앙인 (99)] 알찬 추수감사절 열매
입력 2014-11-11 1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