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인권위도 무시하는 ‘키 162㎝’ 제한 논란

입력 2014-11-10 09:02 수정 2014-11-10 09:08
사진=대한항공 제공

대한항공을 비롯한 국내 항공사 5곳이 승무원 채용 때 키를 ‘162㎝ 이상’으로 제한하고 있다고 연합뉴스가 10일 보도했다.

특히 국가인권위원회가 조사를 거쳐 2008년 3월 “합리적 이유 없는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라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 채용제도 개선을 권고했지만 대한항공은 7년째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매체에 따르면 대한항공과 자회사 진에어 외에도 제주항공, 이스타항공, 티웨이항공 등 5개 항공사는 남녀 승무원 지원 자격으로 ‘신장 162cm 이상’을 명시하고 있다.

승객의 짐과 서비스용품, 구급장비, 비상탈출장비 등을 보관하는 기내 적재함을 여닫거나 비상용품을 꺼내고 적재함 안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하므로 이 같은 기준을 적용한다는 것이다. 적재함 높이는 대개 200㎝가 넘고 대형 기종의 경우 최고 214㎝다.

대한항공 측은 “객실 승무원의 키가 162㎝ 이상은 돼야 기내 안전 확보와 서비스가 정상적으로 가능하다고 판단해 1990년부터 이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항공 등의 신장 기준에 대해 승무원 지망생들 사이에서는 국내외 다른 항공사보다 더 엄격하며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싱가포르항공과 일본항공(JAL)은 지원자격이 키 158㎝ 이상이며 루프트한자항공과 핀에어는 나란히 160㎝ 이상이다. 미국 유나이티드항공은 신장 기준이 5피트(152.4㎝)이다.

에미레이트항공, 에티하드항공, 카타르항공 등 중동 항공사와 캐세이퍼시픽항공 등은 키 대신 ‘암리치’(arm reach) 기준을 두고 있다. 통상 맨발로 뒤꿈치를 들고 팔을 뻗어 손이 닿을 수 있는 거리를 뜻한다.

에미레이트항공과 카타르항공은 최소 암리치가 212㎝이며 에티하드항공은 210㎝, 캐세이퍼시픽은 208㎝다.

미국 델타항공이나 에어캐나다처럼 키나 팔 길이 기준이 아예 없는 곳도 있다. KLM네덜란드항공 자격요건에는 키 제한은 없으나 ‘너무 작거나 크지 않아야 한다’고 나와 있다.

국내에서는 아시아나항공이 2008년부터 지원자격에서 신장 기준을 없앴다.

다만 자격 요건에서 ‘기내 안전 및 서비스 업무에 적합한 신체조건을 갖춘 분’으로 규정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의 자회사 에어부산도 승무원의 신장을 제한하지 않는다.

아시아나항공이 162㎝ 기준을 없앤 것은 인권위원회가 채용제도를 개선하라고 권고한 것이 직접적 계기가 됐다.

인권위원회는 승무원 지망생들의 진정을 접수하고 2008년 조사를 거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승무원 키 제한에 대해 “불가피성이 입증되지 않은 신장조건을 근소한 차이로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이유로 신장 162㎝ 미만인 사람이 응시조차 못하게 하는 것은 합리적 이유 없는 평등권침해의 차별행위에 해당한다”고 결론 내렸다.

경찰청과 소방방재청도 채용 시 키와 몸무게를 제한하다 인권위의 개선 권고를 받아들여 결국 2008년 제한을 없앤 바 있다.

네티즌들은 “대한항공 승무원 키, 1969년까지는 157㎝ 이상이었다가 1981년부터 162㎝ 이상으로 바뀐 거래요. 대한항공 키가 아마 예전대로 다시 되면 다른 항공사들도 따라할 텐데. 대한항공 다시 그렇게 해주실 순 없나요?” “대한항공 지원자격은 키 162㎝ 이상이지만 실제론 160㎝가 합격한 경우가 있다는 사실!! 물론 평균 합격 키는 165㎝ 넘는 걸로 알고 있어요. 하지만 키가 1~2㎝ 작다고 포기할 필요는 없는 거 같아요.” 등의 반응을 보였다.

이명희 기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