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프 마파엘 독일 대사 “어떤 독일인도 통일을 비용 문제로 생각하지 않아”

입력 2014-11-09 16:45
서영희 기자

“베를린 장벽 붕괴 전에도 외부에서는 독일의 ‘통일 비용’에 대한 우려가 많았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독일인도 통일을 비용의 문제로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독일인이 완전한 자유를 찾았다는 점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9일 오전 서울 청계천2가 베를린 광장에서 진행된 국민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롤프 마파엘(59) 주한 독일대사는 이렇게 말했다. 통일에 대한 독일인들의 생각과 이후 계속된 동·서독 지역 경제 불균형 문제에 대한 그의 답변이었다.

이 날 베를린광장에서는 베를린 장벽 붕괴 25주년 맞이 마라톤 행사가 열렸다. 마파엘 대사를 비롯한 운동복 차림의 독일인 100여명이 이 날을 축하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1989년의 기억에 대해 물었다. “모든 독일인들이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데 감사했다”고 마파엘 대사는 답했다. 그는 “유엔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뉴욕 출장 중이었기 때문에 베를린 장벽 붕괴 소식은 독일로 돌아간 뒤 언론 보도를 통해 들었다”면서 “믿을 수 없었고 행운이라고 생각했으며 열광적인 분위기에 휩싸였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통일 이후 독일이 지나야했던 힘든 시절에 대해 마파엘 대사는 “경쟁력이 없었던 동독 지역의 많은 기업들이 파산하는 등 통일 직후 첫 몇 년 간은 실제로 어려운 시기였다”고 회고했다. 그는 “통일 이후 독일 정부는 옛 동독 지역에 신규 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정책을 실시했고, 노동 및 복지정책에 있어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했다”고 설명했다. 통일 이전에 서독이 쌓아놓은 산업 경쟁력이 통일 이후 빠른 시간 내에 국내 경제를 추스를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그는 진단했다.

실제로 라이프치히, 예나, 드레스덴 등 신연방주의 도시들은 강한 산업도시로 발전했다. 신연방주는 통일 이전 동독 지역을 말한다. 브란덴부르크·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작센·작센안할트·튀링겐 등 5개 주(州)가 여기에 속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옛 동·서독의 경제 지표에는 차이가 존재한다. 마파엘 대사는 “신연방주의 생산성은 아직 서독 지역의 80%에 불과하고, 실업률은 두 배에 이른다”면서도 “2019년까지 신연방주 지원정책이 계속될 예정이며 그때까지 격차를 더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그는 “지난해 처음으로 옛 서독 지역에서 신연방주로 이동한 인구가 동에서 서로 간 인구를 앞질렀다”면서 “양쪽이 서로 수준을 맞춰가는 길 위에 있다”고 설명했다.

경제적 문제와 더불어 ‘내적 통합’ 문제도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옛 동독 정권 하에서 정치적으로 탄압받았던 사람들의 명예를 회복해주는 일도 쉽지 않았다. 그는 “동독과 서독 간 괴리 못지않게 동독 안에서의 가해자와 피해자 간 화해가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통일은 많은 해결 과제를 안겨줬지만 독일은 통일 이후 세계 사회에서 경쟁력을 키울 수 있게 됐고, 무엇보다 유럽이 통합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마파엘 대사는 “통일 이후 독일인으로서 느낀 가장 큰 변화는 모두가 자유로이 여행할 수 있게 되고 표현의 자유를 누리게 됐다는 점”이라면서 “더 큰 의미에서는 냉전이 끝나고 유럽이 완전한 통합의 길로 들어서는 촉매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독일인으로서 분단 상황과 통일, 그리고 통일 이후의 통합과정을 오롯이 겪어 온 마파엘 대사는 한반도 통일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을까. 그는 “모든 분단국가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조언하기란 쉽지 않다”고 손을 내저었다. 그러면서도 “우선 남북 간 밀접한 교류와 접근을 통해 변화를 도출해내야 한다”면서 “10년, 20년의 장기적인 정책이 필요하고 주변 국가들의 협조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특히 한반도 통일이 핵무기 없이 이뤄진다면 이는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진보를 상징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반도 인구의 4분의 1이 자유 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건 너무나 큰 비극입니다. 모든 한국인들이 자유 속에서 살아가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마라톤 행사를 시작하기 위해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그가 말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