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그동안 억류해왔던 미국인 2명을 모두 석방했다. 제프리 에드워드 파울(56)씨가 석방된 지 18일 만에 억류 미국인들을 추가 석방한 것이다.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46)씨는 억류 2년여 만에 가족 품으로 돌아오게 됐다. 북한이 이들을 전격적으로 석방한 배경은 무엇인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韓·美 “석방 결정 환영”=미국 국무부는 8일(현지시간) “북한이 배씨와 매튜 토드 밀러(24)씨를 석방했다”고 발표했다. 국무부는 “북한의 석방 조치를 환영한다”며 “석방을 위해 노력해 준 스웨덴 정부 등 전 세계 우방들에 깊은 감사를 표시한다”고 덧붙였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의 결정에 대해) 매우 감사하다(very grateful)”며 “오늘은 그들과 가족에게 매우 좋은 날이다. 그들이 안전하게 돌아온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배씨 등은 이날 제임스 클래퍼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과 함께 미국령 괌에 도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제임스 클래퍼 국장은 이들에 대한 석방 교섭차 북한을 직접 찾았다고 한다.
한국 정부도 북한의 석방 결정에 환영의 뜻을 밝혔다. 다만 북한이 현재 억류하고 있는 김정욱 선교사도 석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외교부는 이날 새벽 대변인 논평에서 “배씨 등이 석방돼 가족 품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게 된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이어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북한이 우리 김정욱 선교사도 조속히 석방하길 바란다”며 “남북한간 인도주의적 문제 해결에 대해서도 (북한이) 적극적으로 호응하길 바란다”고 요구했다. 김씨는 지난해 10월 선교 목적으로 입북했다가 지난 5월 30일 무기 노동교화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北 대미 관계 개선 노력 가능성”=몇몇 외신들은 이날 배씨 등의 석방 소식을 전하며 북미 관계에 변화가 오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내놨다. 뉴욕타임스는 국가정보국 수장인 제임스 클래퍼 국장이 이들의 석방을 위해 직접 북한까지 간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석방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오바마 행정부에 새롭게 접근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분석했다. AP 통신도 북한의 결정이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3개국 순방을 이틀 앞두고 이뤄졌다며 북한의 관계 개선 노력의 하나로 풀이했다.
빌 리처드슨 전 뉴멕시코 주지사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석방 결정은) 그동안 북한이 고수했던 강경 전술을 통해 원하던 성과를 얻지 못했고 그에 따라 대화를 재개하고 싶어 한다는 신호일 수 있다”고 해석했다. 미국이 석방 대가로 유엔에 회부된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한 입장 변화를 약속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그간 북한이 유엔 내 북한인권결의안 처리 상황과 미국의 태도를 확인하면서 미국인 석방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전망했었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오바마 행정부의 한 관리는 “미국인 석방이 북한의 반인권적 상황을 우려하는 미국의 태도 변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며 “미국은 석방 과정에서 북한에 어떠한 보상도 없었다”며 AP 통신에 말했다.
◇억류 미국인 3명 모두 가족 품으로=배씨의 아들 조너선은 이날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돌아와) 더 이상 행복할 수가 없다”며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다. 조너선은 “7일 오후 늦게 아버지와 통화했다”며 “짧은 통화였으나 아버지의 목소리가 좋아 보였다”고 말했다. 배씨와 밀러씨가 석방됨에 따라 북한에 억류됐던 미국인 3명이 모두 고국 땅을 밟게 됐다. 이들이 석방되기 까지는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2년이 걸렸다. 북한에 가장 오래 억류돼 있었던 배씨는 2012년 11월 북한을 방문했다가 체포됐다. 그는 지난해 4월 국가전복음모죄로 15년 노동교화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다. 밀러씨는 지난 4월 관광 목적으로 입국했다가 북한에 억류됐다. 관광증을 찢는 등 입국 검사과정에서 법질서를 위반했다는 이유였다. 밀러씨는 지난 9월 열린 공화국 최고재판소 재판에서 노동교화형 6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다. 배씨 측 가족들은 앞서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배씨를 석방해달라”고 수차례 북한에 호소해왔다. 미국 정부는 앞서 케네스 배씨 등에 대한 석방 협상을 위해 로버트 킹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를 포함한 고위급 특사를 파견하려 했으나 북한 측이 거부했었다.
앞서 미국인 제프리 에드워드 파울(56)씨는 지난 4월 29일 북한을 방문했다가 청진의 한 나이트클럽에 성경을 몰래 놔두고 나오려 한 혐의로 지난 5월 7일 체포됐다. 북한은 지난달 22일 그를 석방했다. 당시 파울씨 석방 과정에 북한과 미국 당국 간 협상은 없었고, 북한이 일방적으로 석방을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파울씨가 석방되면서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북한 억류 미국인 2명 석방…"북미 관계 변화 가능성"
입력 2014-11-09 03:19 수정 2014-11-09 06: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