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관계자들은 오후 3시~5시를 ‘의료사고 마(魔)의 시간’으로 부른다. 점심 식사 후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한 의료진의 실수가 잦은 탓이다. 피로와 싸움 앞에 생사가 오가는 건 의료계 사정만은 아닐 것이다. 목숨을 담보로 일하는 산업 현장에서도, 숫자 하나 단어 하나에 흥망성쇠가 뒤바뀌는 사무실에서도 실수는 치명적이다. 그래서 일과 시간에 밀려드는 잠은 위험하다.
돌이켜보면 우리 사회는 ‘잠’에 관대하지 않았다. 4당5락(4시간 자면 대학에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은 고3에게 불문율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야자’(야간 자율학습)는 예사였다. 그래서 수업시간에 졸다 벌 한번 안 서본 사람은 찾기 어렵다.
사회생활이라고 다를까. 현대사회에서 고용은 ‘(근로자의) 시간이 (고용주의) 자본에 종속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피로는 ‘죄’가 된다. 생의 벼랑 끝에서 살아남기 위한 눈치전쟁이 매일 벌어진다. 접대와 회식, 야근에 짓눌린 직장인의 어깨는 좀처럼 펴지지 않는다. 그래서 잠시 눈을 붙이기 위해 끼니를 거르고 화장실로, 회의실로, 병원으로, 심지어 어젯밤 술을 마시던 유흥주점으로 망명을 떠난다.(국민일보 11월 7일자 10면 참조)
이탈리아·그리스 등 지중해 연안 국가와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시에스타(siesta)’를 즐긴다. 한낮의 무더위가 일의 능률을 떨어트리자 낮에 1~2시간 수면으로 기운을 차린 뒤 저녁까지 일을 하자는 의도다. 전상길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피로에 지친 우리야말로 시에스타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낮잠은 일상에 지친 직장인에겐 심리적 정류장”이라고 표현했다.
입시, 취업, 야근, 회식 탓에 저녁이 없는 삶을 체화하며 앞만 보고 달려온 이 사회의 미생들에게 짧은 ‘낮잠’의 여유 정도는 허락할 수 있지 않을까. 적절한 휴식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
[온라인 현장기자] 한국판 ‘씨에스타’를 허(許)하라
입력 2014-11-07 16:37 수정 2014-11-07 1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