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휴식을 팝니다…국내 첫 직장인 대상 ‘낮잠카페’ 등장

입력 2014-11-06 17:44 수정 2014-11-06 20:14
국내 최초, 유일의 ‘낮잠 카페’. 이병주 기자

지난 4일 점심 무렵 양복 차림의 두 남자가 서울 계동 골목의 한 건물 3층으로 허겁지겁 뛰어올라갔다. 인근 기업에 올해 함께 입사한 신입사원 박모(27)씨와 주모(27)씨다. 새벽 2시까지 이어진 회식의 숙취가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7시간 뒤면 또 회식이란다. 박씨는 “쪽잠이라도 자둬야 살겠다는 생각에 점심도 거르고 왔다”며 “너무 힘들면 빈 회의실 책상에 엎드려 눈을 붙이는데 오늘따라 빈곳이 없어서 처음 이곳을 찾았다”고 말했다. “아래층 편의점에서 라면으로 점심을 때우고 올 테니 자리 좀 맡아주세요.” 두 남자는 3층 카페 주인에게 당부하곤 다시 계단을 내려갔다.

◇휴식을 팝니다…국내 첫 ‘낮잠 카페’=박씨와 주씨가 찾은 이곳은 지난 8월 26일 문을 연 카페 ‘낮잠’이다. 국내에 하나뿐인 이 낮잠 카페에선 5000원이면 음료 한 잔에 한 시간 숙면을 취할 수 있다. 원하는 시간에 깨워주는 건 기본이다.

입구에서부터 아로마향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20평 남짓한 공간에 알록달록한 14개의 해먹과 커튼이 적절한 간격을 유지하고 있었다. 뉴에이지 피아노 음악이 잔잔히 깔리고 가습기는 수증기를 뿜어냈다. 오전 11시가 갓 넘었지만 벌써 직장인 2명이 해먹에 몸을 싣고 있었다. 점심시간엔 붐벼 일찍 오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상사 눈을 피해 잠을 청하려는 직장인이 블로그나 페이스북을 보고 알음알음 찾아온다. 점심시간을 쪼개 30분에서 1시간씩 쉬다 가는 경우가 많다.

박모(29·여)씨와 한모(27·여)씨도 샌드위치를 싸들고 이날 처음 ‘낮잠’을 찾았다. 박씨는 “지난주 휴가를 내고 여행을 다녀왔다. 피로가 풀리지 않아서 힘들었는데 회사 휴게실은 좁고 불편해서 블로그를 찾아보고 방문했다”고 말했다.

◇화장실에서 룸살롱까지…‘쪽잠’의 요새=대부분 직장인은 ‘낮잠’은커녕 잠시 눈을 붙이는 ‘쪽잠’만 잘 수 있어도 감지덕지다. 공기업 2년차 박모(29)씨가 졸린 눈을 비비며 찾는 곳은 화장실이다. 전날 회식이나 야근을 한 경우 점심시간 전후로 몰려드는 피로를 감당할 길이 없어서다. ‘잠자리’가 불편해 20분 이상은 자지 못한다. 사무실 소파도 있지만 눈치 보지 않고 잘 수 있는 화장실을 선호한다.

출판업계 4년차 영업사원 홍모(28)씨는 잦은 야근과 접대로 채 5시간도 못 자는 날이 많다. 거래처를 오가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10~20분씩 잔다. 중견기업 대리 이모(28·여)씨는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엔 점심시간에 사무실 책상에서 쿠션을 베고 담요를 뒤집어쓴다. 대기업 3년차 류모(25·여)씨는 가끔 회사 ‘수면실’을 이용하는데 눈치가 보여 이용자가 적은 탓에 침대는 늘 텅 비어 있다고 했다.

사내 휴게실보다는 차라리 병원이 훌륭한 도피처다. 점심시간에 영양주사를 맞으며 잠을 자려는 직장인들로 붐비는 통에 강남·광화문·여의도 일대 피부과·내과는 예약 경쟁이 치열하다. 밤이면 회식이 펼쳐지는 ‘룸’ 형태의 유흥주점이 낮 동안 회식에 지친 직장인들의 쉼터가 되기도 한다. 낮 시간 여의도 일대의 유흥주점 10여곳은 커피 등 음료를 주문하면 낮잠을 잘 수 있도록 룸을 제공하고 있다.

◇끝나지 않는 눈치싸움…‘낮잠 쟁탈전’=카페 ‘낮잠’ 정지은 대표는 기업 강의를 다니던 시절 수면부족에 힘들어하는 직장인을 보고 창업 아이디어를 얻었다. 소상공인진흥원의 신사업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정 대표는 “회사원은 회사에서 자는 모습을 보이는 것 자체를 불편해하거나 부담스러워한다”고 말했다.

한 생활정보지는 최근 직장인 646명을 상대로 낮잠 설문조사를 벌였다. 응답자 83.3%가 직장에서 낮잠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업무의 생산성과 효율성 증가(37.8%·복수응답), 만성피로 해소와 건강유지(32.8%)가 주된 이유였다. 그러나 70.3%는 평소 직장에서 낮잠을 자지 못한다고 했다.

전상길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낮잠은 심리적 정류장”이라며 “점심 후 충분히 휴식하면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개인 삶의 질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