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고깃집 숯불 피우던 60대 직원의 비애…가스중독 사망 후 소송 끝에 승소

입력 2014-11-06 17:15 수정 2014-11-06 20:05

A씨(63)는 2010년 3월부터 서울 강남의 대형 고깃집에서 숯불 피우는 일을 했다. 환갑을 넘긴 나이였지만 숯불 피우는 작업은 건물 밖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해야 했다. 날씨가 추워져도 마찬가지였다. 간간히 석쇠 불판도 닦아야 하는 등 업무 강도가 높았다. 매일 오전 8시30분에 출근해 오후 9시쯤 퇴근했으나 월급은 115만~160만원에 불과했다.

A씨가 일한 곳은 고기와 냉면이 주 메뉴인 제법 유명한 식당이다. 규모는 300평이 넘고 좌석만 260석이나 된다. 하지만 A씨가 몸을 녹일만한 휴식 공간은 마땅치 않았다. 점심 장사가 끝나고 오후 1시50분부터 1시간40분 정도 주어지는 휴식시간에 식당 옆 창고에서 지냈다. 원래 직원 유니폼 창고로 사용하던 곳인데 한 사람이 겨우 드나들 수 있는 작은 방이다.

A씨는 창고 안에 있는 탁자를 간이침대 삼아 이불을 덮고 언 몸을 녹였다. 2011년 11월 15일에도 평소처럼 탁자 위에서 잠이 들었다. 하지만 깨어나지 못했다. 오후 3시30분쯤 오물을 토하고 쓰러진 채로 발견됐다. 곧바로 근처 병원에 후송됐으나 사망했다. 탁자 밑에서 숯불이 담긴 화덕이 발견됐다. 추운 날씨에 난방이 되지 않는 창고에서 숯불로 몸을 녹이려다 일산화탄소에 중독된 것이다. 이날 평균 기온은 7.2도, 최저 기온은 3.4도였다.

A씨 유족은 “식당에서 사망했으니 산업재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지만 근로복지공단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식당 주인 B씨가 사고 전 몇 차례 A씨에게 ‘방에서 숯불을 쓰지 말라’고 주의를 줬는데 이를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유족들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다. 서울행정법원은 2012년 12월 유족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B씨가 숯불을 쓰지 말라는 구체적 지시를 한 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설령 그런 지시가 있었더라도 적당한 휴식 시설을 마련해 줘야 하는 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게 법원 판단이었다.

이후 A씨 유족은 식당 주인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1단독 이진화 판사는 1400만원을 지급하라며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6일 밝혔다. 이 판사는 “B씨가 제대로 된 난방시설이 없는 창고에 A씨를 방치했다”며 “A씨 유족이 이번 사고로 큰 고통을 받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