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조원의 혈세가 투입된 호남고속철도 공사가 ‘제비뽑기’를 통한 국내 대형 건설사들의 공구 나눠먹기 식으로 진행된 사실이 드러났다. 이른바 ‘빅7’ 메이저건설사(시공능력평가 상위 7개 건설사)들이 먼저 담합 모의를 한 뒤 합의 내용을 전파하면 나머지 입찰 참가 희망업체들이 이를 이행하는 구조였다.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부장검사 서봉규)는 건설산업기본법 위반 혐의 등으로 14개 건설사와 각 회사 영업담당임원 등 14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4일 밝혔다. 기소된 건설사는 GS건설 대림산업 현대산업개발 SK건설 대우건설 현대건설 두산건설 쌍용건설 동부건설 삼환기업 KCC건설 롯데건설 한진중공업 금호산업 등이다. 검찰은 또 한라건설 코오롱건설 경남기업 남광토건 삼부토건 삼성중공업 등 6개사를 벌금 3000만~5000만원에 약식기소했다.
이 건설사들은 2009년 한국철도시설공단이 발주한 호남고속철도 노반신설 공사 13개 공구의 입찰에서 자신들이 미리 정한 업체가 낙찰을 받도록 하고 나머지 회사는 ‘들러리 입찰’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총 19개 공구 가운데 최저가 입찰 방식으로 발주된 13개 공구 전체에서 이 같은 담합이 있었다.
검찰에 따르면 2009년 6~7월 철도시설공단이 호남고속철도 노반 시설 공사를 발주할 것이란 소식이 전해지자 빅7 건설사(GS건설 대림산업 현대산업개발 SK건설 대우건설 현대건설 삼성물산)의 관급공사 담당 실무자 7명이 서울의 한 식당에 모였다. 이들은 입찰 참여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는 건설사 21개를 선별한 뒤 이를 A·B·C 3개 그룹으로 나누고, 각 그룹에 4~5개씩 공구를 배정했다. 이들은 합의 내용을 나머지 14개 건설사에 연락해 담합에 동참하겠다는 승낙을 받아냈다. 이후 그룹별로 모여 제비뽑기를 해 13개 공구 공사를 수주할 13개 건설사를 뽑았다.
공구를 배정받은 업체들은 입찰가를 다른 업체들에게 미리 알려주면서 이보다 높게 입찰에 나설 것을 요청했다. 그 결과 건설사들은 당시 최저가 경쟁입찰의 평균 낙찰률(약 73%)보다 5% 포인트 가량 웃도는 77∼79%대 낙찰률로 공사를 따낼 수 있었다. 1개 공구당 입찰가가 1000억원대 중반에서 많게는 3000억원에 이르는 점에 비춰보면 공사비를 수십억∼수백억씩 더 챙긴 셈이다. 추첨에서 떨어진 회사는 해당 공구에 구성원 사업자(일명 ‘서브사’)로 참여하거나 비슷한 규모의 다른 건설공사를 수주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이들 21개사 가운데 담합 사실을 자진신고(리니언시)한 삼성물산을 제외한 20곳을 기소했다. 또 담합을 최종 승인한 각 회사의 임원을 재판에 넘기는 대신 실무자들은 처벌하지 않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7월 호남고속철도 공사 입찰에 3조5980억원 규모의 담합이 있었던 사실을 적발하고 건설사 측에게 시정명령과 함께 4355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었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
대형 건설사들 호남고속철도 ‘수주 나눠먹기’ 담합…수조원 혈세 제비뽑기로 ‘꿀꺽’
입력 2014-11-04 2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