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최고 존엄 비방전으로 무너지는 남북관계

입력 2014-11-03 16:50
국민일보 DB

대북전단(삐라) 살포 문제로 시작된 갈등이 남북 간 최고지도자에 대한 상호 비방전으로 격화되는 양상이다. 북한이 “최고 존엄(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 모독을 용납할 수 없다”고 신경을 곤두세우자, 우리 정부당국 역시 “박근혜 대통령까지 거론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정면 대응에 나선 것이다. 이처럼 양측이 ‘최고 존엄 훼손’ 문제로 맞부딪치면서 남북관계가 내년 상반기까지 상당기간 냉각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북한은 전날에 이어 3일에도 박근혜 대통령과 우리 정부에 대해 막말까지 동원하며 깎아내렸다. 노동신문은 ‘대결과 전쟁을 몰아오는 반민족적 범죄행위’라는 제목의 논설에서 “북남관계 개선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삐라살포 난동과 그 파국적 후과(결과)는 괴뢰당국이 강행하는 반공화국 ‘인권’ 모략소동의 대결적 본질을 낱낱이 폭로해주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어 “괴뢰집권자(박 대통령)가 반공화국 심리전을 위해 군사분계선일대에 설치했던 시설이 철거된데 대해 호통을 쳤다”며 “우리의 존엄과 체제를 어떻게 하나 해쳐보려는 그(박 대통령)의 대결광기가 어느 지경에 이르렀는가 잘 알 수 있다”고도 했다. 북한은 지난 1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성명을 통해 박 대통령을 “삐라살포놀음의 주범은 괴뢰당국이며 그 배후주모자”라고 격렬히 비난한 바 있다.

그러자 우리 정부도 ‘강경 대응’으로 선회했다. 임병철 통일부 대변인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박 대통령)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다고 비난하지 않은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북한의 박 대통령 비난이 자신들의 ‘최고 존엄 훼손’과 마찬가지라는 입장이다.

정부의 대북전략 선회는 최근의 북한 행태가 도를 넘어섰다는 판단 때문으로 분석된다. 지난달 2일 북한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은 박 대통령을 겨냥해 “유엔에서 동족을 헐뜯은 악담질의 능수”라고 했다. 4~5월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 등에는 ‘역도’ ‘제거해야 할 특등 재앙’ ‘살인마’ 등의 전투적인 인신공격이 도배되다시피 했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반박성명 정도만을 발표했고, 노골적인 대결구도는 피해 왔다. 그러나 이번 비방은 당초 10월말~11월초 예정됐던 남북 2차 고위급 접촉을 무산시킨 직접적 원인이란 점에서 차원이 다르다는 게 대체적 평가다. 여권 관계자는 “통일부 대변인의 브리핑은 북한이 회담 성사 조건으로 ‘비방 금지’를 걸어놓고 자신들의 의도만 관철하려는 태도를 버리라는 메시지”라고 해석했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은 대남 비방전을 내부 주민단속에까지 이용하려 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대응이 지나치게 ‘속 좁은’ 대응이라는 반론도 있다. 남북 모두 ‘통큰 양보’가 필요하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북한의 예민한 반응은 불안정한 김정은 체제와 흡수통일에 대한 부담감이 깔려 있다”며 “남북대화 기회를 잘 살릴 기회를 정부가 외면하면서 실기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유동근 기자 dk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