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오후 3시쯤 “누가 화장실 옆 칸에서 절 내려다보는 것 같다”는 겁에 질린 여성의 112신고가 접수됐다. 공중화장실에 들어갔는데 칸막이 위로 인기척이 느껴져 봤더니 검은 물체가 스치고 지나갔다는 내용이었다. 깜짝 놀라 귀를 기울여보니 옆 칸에서 미세하지만 바스락거리는 소리도 계속 들렸다고 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 여의도지구대 경찰관들은 즉시 현장으로 출동했다. 놀란 여성 뒤로 잠겨 있는 칸이 보였다. 경찰은 문을 두드리며 나오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묵묵부답이었다. 경찰은 여성이 있었던 화장실 칸으로 들어가 좌변기를 밟고 올라서서 옆 칸을 봤다. 검은색 패딩 점퍼를 입은 한 남성이 가만히 웅크리고 좌변기에 앉아 있었다.
경찰은 삼단봉을 꺼내 남성이 앉아있는 칸막이 안으로 넣었다. 문고리를 툭툭 두드려 문을 열었다. 안에는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성이 바지를 벗은 채 술에 취한 듯 상체를 숙이고 있었다. 꿈쩍도 않던 이 남성은 경찰관들이 바지를 입혀 화장실 밖으로 데리고 나가려 하자 갑자지 욕설을 퍼부었다. 주먹을 휘두르고 발차기를 하며 행패도 부렸다. 경찰관에게 제압당한 A씨(28)는 현행범으로 체포돼 지구대로 갔다. 지구대에서도 A씨의 음주난동은 계속 됐다.
이 때까지는 술에 취해 여자 화장실에 들어간 것으로 생각할 만했다. 그런데 매일 취객을 상대하는 지구대 경찰관들을 속이기에는 A씨의 ‘눈빛 연기’가 어설펐다. 눈동자 초점이 너무 또렷했던 것. 술 냄새도 나지 않은 데다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 나오면 말을 하지 않는 등 술에 취한 사람으로 보기 어려웠다.
결국 A씨는 성폭력특별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경찰 관계자는 2일 “보통 화장실 추행범들은 훔쳐보다 걸리면 바로 도망가는데 A씨의 경우 신고가 된 사실을 모르고 계속 숨어 있었던 것 같다”며 “범행 전 화장실에 오랜 시간 숨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공중화장실 성추행범 취한 척 연기하며 빠져나가려다 ‘덜미’
입력 2014-11-02 1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