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 작가 '타자의 초상' 11월 5일까지 갤러리 팔레 드 서울, 부모 시리즈 통해 현대인 초상 표현

입력 2014-10-25 09:49
끊임없는 그리기의 행위와 회화가 갖는 시간의 개념 등을 화면에 재현하는 김준기 작가의 작품은 다양한 층위를 드러낸다. 개인적 서사와, 가족의 사건, 심리적 풍경, 시간과 공간 등을 거울이라는 표면, 거울의 이면에 새기는 작업이다.

보기와 생각하기, 새기기의 과정에서 던지는 지속적인 질문은 존재와 삶에 관한 것으로 어떤 시간과 공간 속에서 가벼워지고 사라지는, 어쩌면 소멸되어가는 현대인들의 불안한 심리, 찰나적인 기억을 ‘빛 그림’이라는 나름의 방법으로 그려낸 것이다.

그의 8회 개인전 ‘타자(他自)의 초상(肖像)’이 10월 25일부터 11월 5일까지 서울시 종로구 통의동 갤러리 팔레 드 서울(02-730-7707)에서 열린다. 타인의 초상을 통해 바라보는 자화상(自畵像)으로, 전신(傳神)을 바탕에 두고 표현한 초상화와 거울에 비친 자신들의 모습을 오가며 타인과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을 통해 정체성을 찾아가는 작업이다.

이번에 제작된 아버지 시리즈는 2년 전 갑작스럽게 발생한 교통사고로 병원 치료를 받았던 아버지의 모습과 간병인으로 그 곁을 지켰던 작가의 소회를 담은 작업들이다. 어머니 시리즈는 올 초 수술을 하고 회복 중인 장모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작업은 거울의 뒷면을 전기드릴과 에어드릴을 이용하여 도금된 부분을 한 점 한 점 벗겨내어 형상을 만들고, 투명해진 그 구멍 사이로 LED 빛을 투과시켜 이미지를 그려내는 작업이다. 한 점 한 점 새겨진 드릴의 구멍과 그 구멍 사이로 새어나오는 수 만개의 빛이 모여 부모의 형상을 만들어 가는 과정 속에서 우리들의 삶과 인생, 날것의 자신을 재발견하는 작업이다.

‘타자(他自)의 풍경’은 2010년 후반부터 진행된 ‘반영된 풍경’ 시리즈와 최근에 몰입하고 있는 ‘타자(他自)의 초상’ 시리즈를 하나의 작업으로 묶어낸 작업이다. 아버지의 땅과 어머니의 숲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본 심리적 풍경작업이다.

그의 작업에서 실재의 풍경과 반영된 풍경, 재현된 현실과 거울에 반영된 현실, 타인의 초상과 자신의 초상을 구분 짓거나 풍경과 초상의 이미지를 단순히 시각적인 잣대로 구분 짓는 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풍경과 초상 등 그려진 모든 이미지는 그것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순간에서부터 작품의 이미지로 선택하고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 동안 존재와 삶에 관한 여러 가지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하고, 상기시켜 그 출구를 모색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타자의 풍경’ 작업에서는 울창한 숲, 청명한 햇빛,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 쓰러지고 부러진 나무, 말라 비틀어진 넝쿨들, 이름 없는 풀들, 고목, 누군가 머물다 사라진 흔적들 등 우리가 일상의 여행을 통해 자주 접하고, 느끼고, 생각했지만 쉽게 지나치고 잊어버렸던 풍경의 기억을 찾아내 거울의 이면에 새기고, 그 흔적을 통해 투과된 빛의 형상으로 구현해낸 것이다.

존재와 부재의 풍경이 뒤섞여진 이번 전시를 통해 만나게 될 인물과 풍경의 이미지들이 단순히 외형적인 형상의 자극을 넘어 욕망의 과잉으로 치닫고 있는 우리의 삶을 성찰하고, 가쁜 숨을 내쉴 수 있는 나름의 여유를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작가는 말했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