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에 파트리크 모디아노… 그의 생애와 문학

입력 2014-10-09 21:09 수정 2014-10-10 00:54

프랑스 작가 파트리크 모디아노(Patrick Modiano·69)가 2014년 노벨문학상 주인공으로 선정됐다. 프랑스 작가로는 2008년 르 클레지오 이후 6년 만이다.

스웨덴 한림원은 9일 “붙잡을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을 기억의 예술로 환기시키고 나치 점령기 보통사람들의 삶을 드러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어 “그의 책은 어렵지 않고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모디아노는 바스러지는 과거, 잃어버린 삶의 흔적으로 대표되는 생의 근원적인 모호함을 신비로운 언어로 탐색해온 현대 프랑스 문학의 거장이다. 그는 나치의 점령, 나치가 프랑스에 미친 영향, 자신의 정체성에 오랜 시간 천착해 작품 활동을 해왔다.

그는 한국 독자들에게도 친숙한 이름이다. 1978년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수상한 그의 대표작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국내 독자들에게 많이 읽혔고, 작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문학에 바친 생애, 발표작마다 찬사=모디아노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인 1945년 7월 30일 프랑스 불로뉴 비양쿠르에서 이탈리아계 유대인 아버지 알베르 모디아노와 벨기에 영화배우인 어머니 루이자 콜페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60년 파리의 앙리 4세 고등학교에 입학한 그는 열다섯 살에 어머니 친구였던 소설가 레이몽 크노를 만나면서 문학의 세계에 눈을 뜬다. 63년 대학입학자격시험에 합격하지만 공부를 중단하고 문학에 삶을 바치기로 결심한다.

열여덟 살 때부터 글쓰기를 시작한 그는 68년 소설 ‘에투알 광장’으로 로제 니미에상, 페네옹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후 발표하는 작품마다 평단과 독자의 찬사를 받았다. 72년 발표한 세 번째 작품 ‘외곽 순환도로’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대상을 거머쥐었고, 75년에는 ‘슬픈 빌라’로 리브레리상을 수상했다. 이어 78년 발표한 여섯 번째 소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로 공쿠르상을 받았다. 1984년과 2000년에는 그의 전 작품에 대해 각각 프랭스 피에르 드 모나코상과 폴 모랑 문학 대상을 받았다.

그의 작품 중 ‘슬픈 빌라’ ‘청춘시절’ ‘8월의 일요일들’ ‘잃어버린 대학’은 영화로도 만들어졌고, 그는 2000년 칸영화제 심사위원으로 나서기도 했다.

◇인간 존재와 생의 근원을 탐구하는 작품세계=나치 점령기 프랑스가 겪었던 현대사의 비극과 성장기의 개인적 상처는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다.

유대인이었던 아버지에 대한 애증으로 그의 소설은 유대인의 삶에 대한 끊임없는 추적과 기록의 면모를 보여 왔다. AP통신에 따르면 유대인 출신의 부친은 게슈타포와 연루되었고 그런 나치 점령 하 프랑스인의 고통스런 경험은 그의 작품에 녹아 있다. 17세에 부친과 절연하기도 했던 그는 첫 소설 ‘에투알 광장’에서 유대인에게 새겨진 수치의 표식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어머니의 정을 느끼지 못했고 남동생은 어릴 때 세상을 떠나는 등 성장기 가족은 부재했다.

그래선지 시적인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그의 소설은 항상 시간의 저편으로 사라져간 과거의 애틋한 흔적을 되살리는 데 바쳐진다. 문체는 투명하고 간결한데 비해서 그가 그려내는 세계는 어둡다. 인간의 정체성을 어둠 속으로 침몰시켜 버리는 세계, 인간의 출발점 자체가 흐릿해진 세계, 인간 실존의 근원이 상실돼 가는 세계를 기억상실자가 과거를 찾아가는 필사적인 몸부림처럼 그린다. 단순했던 진실이 점점 더 불확실해지는 세계라는 주제가 그의 작품들에서 계속 반복된다.

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작품은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다. 그는 이 소설로 “현대 프랑스 문학이 거두어들인 가장 큰 성과”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작품은 기억상실증에 걸린 한 퇴역 탐정이 자신의 과거를 추적하는 여정을 그린 소설이다. 모디아노는 이 책을 통해 기억 상실로 상징되는 프랑스의 비극적 현대사의 한 단면을, 나아가 인간 존재의 소멸된 자아 찾기라는 보편적인 주제의식을 명징하게 드러내고 있다. 소멸한 과거, 잃어버린 삶의 흔적, 악몽 속에서 잊어버린 전쟁의 경험을 주제로 해 잃어버린 시간을 특유의 신비하고 몽상적인 언어로 탐색해냈다.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는 78년 모디아노의 작품을 국내에 처음 소개했다. 9일 전화 통화에서 김 교수는 “모디아노의 주제의식은 나치 점령기 프랑스의 고통스러운 기억과 연결된 것으로 보인다”며 “개인적으로도 모디아노는 부모의 품에서 자라지 못했고 누군가에게 맡겨지거나 기숙학교에서 생활했다. 당시 아버지는 나치를 피해 다녔고 어머니는 유랑하는 배우처럼 살았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자신이 알고 있는 게 과연 사실인지 의문을 품기 시작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한승주·김남중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