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택 작가 ‘倣(방) 옮겨진 산수유람기’ 갤러리 나우 8일부터 개인전...유화로 그림의 본질로 돌아가다

입력 2014-10-07 15:50
임택의 신작 '倣옮겨진 산수유람기'
임택의 기존 입체사진 작품 '옮겨진 산수유람기'
임택 '倣옮겨진 산수유람기.
두 작품을 꼼꼼하게 비교해보자. 둘 다 임택(덕성여대 교수) 작가의 작품이다. 한쪽은 뭔가 좀 매끄럽고 한쪽은 붓질의 흔적이 엿보인다. 홍익대 동양화과를 나온 작가는 원래 산수화를 그렸다. 있는 그대로의 산수화가 아니라 내면의 산수화라고나 할까. 풍경을 단순히 화폭에 옮기는 것에서 나아가 작가의 시선으로 풍경을 설치하고 사진을 찍었다.

동양화와 사진이 결합된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것이다. ‘옮겨진 산수유람기’라는 타이틀을 붙였다. 옛 선비들이 유유자적하듯 산수를 유람하는 풍경을 회화·사진 입체설치 작품으로 옮겨 놓았다. 작품 속에는 사람도 있고 달도 있고 비행기도 있고 낙하산도 있고 정자와 나무도 배치했다. 관람객들이 그림 속 유람에 동참할 수 있게 유도하기도 했다.

작가는 동양화를 설치와 사진으로 재해석해 동양화의 변용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유수의 미술관과 갤러리가 그의 작품세계에 관심을 가지고 컬렉션하고 있고, 중·고등학교 미술교과서에도 작품이 실리기도 했다. 작품 배경인 산수는 도시적이고 모던하다. 산들은 큐브처럼 단순화돼 있고 색깔은 한지처럼 희다. 그곳의 풍경은 호방하면서도 유쾌한 이미지다.

그런 그가 10여년 만에 그림을 전시한다. 그동안 설치와 사진작업을 하면서 그리는 작업도 병행했지만 발표는 하지 않았다. 그만큼 준비과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처음 접해 보는 재료의 특질을 자신만의 작업으로 안착시키는 어려움도 있었고, 붓질의 숙련에도 긴 시간이 걸렸다. 이젠 캔버스의 공간이 새로운 놀이터가 되어 한동안 헤어 나오지 못할 것 같다고 한다.

그의 신작은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갤러리 나우에서 8일부터 21일까지 전시된다. 전시 제목은 ‘倣(방) 옮겨진 산수유람기’다. 디지털 프린트 작품을 다시 유화로 옮기는 작업이다. ‘倣’은 ‘본뜨다’라는 의미다. 본뜨는 것은 대상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것에 도달하고픈 마음에서 비롯된다. 모방을 통해 새로운 창작을 구현하겠다는 의도다.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동양화 물감과 전혀 다른 유화의 성질을 온전히 터득하기 위해 치열하게 붓질했다”며 손가락에 굳은살을 보여주었다. 작가는 “내 작품을 본뜨면서 지금까지 작업했던 동양화의 표현적 실험을 마치고자 한다. 이젠 스스로의 복제라는 행위를 통해 내 안의 감성과 본질에 대해 더 가까이 접근하려 한다”고 말했다.

‘倣 옮겨진 산수유람기’는 작가 자신이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고, 화면과 직접 대면하면서 감성을 붓끝으로 표현하는 작업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으게 한다. 그림을 그리던 그가 다시 그림을 그리는 작가로 돌아가는, 이른바 미술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붓질 회화’로 회귀한 것이다.

사진 작품을 그림으로 그리는 행위는 오리지널에 관한 의문을 던진다. 동양화의 이미지를 설치작품으로 구현하고, 그것을 사진으로 찍어 복제하고, 그 복제된 작품을 다시 붓으로 복제하는 작업은 어느 것이 오리지널인가. 진위가 구별되지 않는 사회에 작은 메시지를 남긴다. 하지만 심각하지는 않다. 꿈속의 정경처럼 마음을 편하게 하고 위로와 힐링을 전하는 그림들이다.

교수직에 있으면서도 안주하지 않고 수고를 아끼지 않는 작가는 이번 전시 작품에 정원에나 있을 법한 꽃나무들을 곳곳에 배치했다. 작가가 추구하고 있는 새로운 작업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이미지다. 동양화의 전통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으면서도 참신하고 전혀 다른 작업을 모색하는 작가의 향후 행보에 관심을 쏠리는 이유이기도 하다(02-725-6999).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