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생리의학상은 뇌 속의 길 찾기 시스템의 비밀을 잇달라 규명한 과학자들이 차지했다.
스웨덴 카롤린스카 노벨상위원회는 6일 “2014 노벨상 생리의학부문 수상자로 영국 런던대의 존 오키프, 노르웨이 과학기술대의 메이-브릿 모설과 에드바드 아이 모설 부부 등 3명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뇌에 내장된 ‘길 찾기 내비게이션 시스템’의 비밀을 잇달아 밝혀낸 공로를 인정받았다.
오키프 교수는 미국과 영국 이중국적자이며 모설 교수 부부는 사실혼 관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키프 교수는 총 상금의 절반인 400만크로나, 모설 부부에게도 나머지 절반의 상금이 수여된다.
뇌 질환에 걸리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증세 중 하나가 길을 잃는 것이다. 한 번 가본 길은 언제라도 기억하는 길눈 밝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사한 지 1주일이 지나도 이 골목이 저 골목과 같다고 하는 ‘길치’도 있다.
오키프 교수 등은 이 두 부류의 기억 차이가 뇌 안에 들어 있는 내비게이션 시스템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결국 비밀을 밝히는데 성공했다.
오키프 교수는 1970년대 ‘장소 세포’(place cell)의 존재를 처음 밝혀냈다. 핵심은 뇌에서 공간인지와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에 있다. 장소 세포는 특정위치에서만 작동한다. 이를테면 출근길에 집을 나온 뒤 다섯 걸음을 걸어 장미나무를 만나면 그에 맞는 장소 세포가 전기신호를 낸다. 퇴근길에 집 앞에 있는 같은 장미나무를 만나면 똑같은 장소 세포가 다시 작동한다. 오키프 교수는 볼 마우스 위에 생쥐를 매달아 두고 눈앞에 가상현실 화면을 보여주는 실험을 통해 이를 검증했다.
내비게이션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특정 위치를 파악하는 것뿐 아니라 전체 공간에서 현재 위치가 어디쯤인지도 알아야 한다. 지도에서 위도와 경도를 통해 위치를 찾는 것과 마찬가지다.
모설 교수 부부는 2005년 뇌에도 이 같은 역할을 하는 ‘격자 세포’(grid cell)가 있음을 밝혀내 과학잡지 네이처에 보고했다.
이들은 생쥐가 상자 안에서 먹이를 찾아 이리저리 오갈 때 뇌 신호를 분석했다. 그러자 해마 바로 옆 내후각피질에 있는 신경세포가 일정한 거리마다 집단적으로 작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평면에 표시했더니 상하좌우로 거리가 일정한 격자들이 만들어졌다. 뇌 지도에 위도와 경도선을 그린 셈이다. 생쥐가 상자를 상하좌우로 일정한 간격으로 나눈 특정 지점을 지날 때만 격자 세포가 작동했다. 다시 말해 생쥐가 상자를 멋대로 왔다 갔다 한 것 같지만 자기가 어느 지점을 지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서유헌 한국뇌연구원 원장은 “알츠하이머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생기면 가장 먼저 장소 세포와 격자 세포가 있는 곳이 손상을 입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오키프 교수 등의 뇌 내비게이션 연구는 이런 뇌 질환을 일찍 찾아내고 치료하는 데도 큰 도움을 줬다”고 평가했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
노벨의학상은 ‘뇌 내비게이션’ 규명한 과학자 3명에게
입력 2014-10-06 19:42 수정 2014-10-06 2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