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전문가들이 보는 북한 고위급 인사들 방한

입력 2014-10-04 15:44
2014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 참석차 4일 방남한 북한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왼쪽부터), 최룡해 노동당 비서, 김양건 당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담당 비서. 인천=사진공동취재단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을 포함한 북한 고위인사들이 전격적으로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 참석을 위해 방문했다. 워낙 갑작스러운 방문이어서 온갖 추측이 나온다. 북한의 의도가 무엇인지,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경색된 남북관계에 돌파구가 마련되는 것인지를 전문가들에게 들어봤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당과 군부의 최고 핵심 실세인 최룡해 당중앙위원회 비서, 황병서 총정치국장, 그리고 대남정책 최고책임자인 김양건 대남담당 비서를 한국에 파견한 것은 극도로 경색된 남북관계에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특단의 카드를 내민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북한 고위급 실세들의 이번 방한은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시 북한이 김양건 비서와 김기남 비서를 특사 조문단으로 파견해 김 전 대통령의 영전에 조의를 표하고 이후 청와대를 예방한 것과 비슷한 접근 방식입니다.

그런데 그 때와 차이가 있다면 군부 최고 책임자인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처음 방한을 했다는 점입니다. 이는 북한이 최근 민감하게 반응했던 대북전단 살포문제와 관련해 청와대와 대타협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김정은 제1비서가 전례 없는 고위급 실세 파견을 결정한 것은 그가 몸이 불편하지만 고도의 정치적 결단을 내리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과시하는 효과도 노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의 고위급 인사들은 사실상 김정은 제1비서의 ‘특사’로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달할 친서나 구두 메시지를 가지고 왔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이번 남북 고위급 접촉을 통해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박근혜 정부 임기 내내 남북관계 경색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번 북한 고위급 인사의 방한이 향후 3년 반의 남북관계를 좌우할 수 있는 결정적인 순간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장용석 서울대 평화통일연구소 선임연구원

북한이 고위급 인사들을 보낸 의도는 3가지 정도로 보입니다. 일단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선전한 북한대표팀을 격려하고 대내적 위상 제고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있어 보입니다. 원래 아시안게임 폐막식 때 외국사절들이 올 수 있는 것이죠.

두번째는 대남관계 개선의지를 국내외에 과시하는 의도가 있을 것입니다.

세번째 가장 중요한 건 결국 청와대랑 담판을 지으려고 하는 의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황병서가 주목됩니다. 그는 총정치국장일뿐만 아니라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기 때문입니다. 황병서가 내려온다는 건 급이 마땅치가 않으니 청와대가 만나줘야 되는 것이고, 만약 그가 예방을 하게 되면 결국 급이 바로 위인 대통령이 만나줘야 됩니다. 그런 걸 압박하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Q 이번에 국무총리 면담계획 없이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보낸 것은 적절한가요?

A 유동적입니다. 점심 먹으면서 이야기가 잘 되면 오후에 대통령을 예방할 수도 있겠죠. 박근혜 대통령도 나름대로 정무적인 판단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얘기하는 것 보고나서 오후에 만날 수도 있다고 봅니다. 대통령을 안 만나도 폐막식에서 총리를 만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뭐 그런 일정들이 가능하지만 유동적입니다.
남북이 만났을 때 북한이 꺼낼 얘기들도 결국 6·15, 10·4 이행, 군사훈련 중단, 5·.24 해제 등 현안 많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런 건 기본적으로 우리가 수용하기는 어려운 것일 거고, 결국은 삐라 살포 문제 등을 집중적으로 제기해서 성과를 낼 가능성, 청와대와 담판을 지어서 그 문제를 풀어보려는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통일에 대해서도 연방제, 또는 제도 통한 통일 등에 대해 우려 표명을 할 수도 있고, 핵심적인 현안은 결국 삐라 살포 중단, 자기 최고 영도자에 대한 비난 중단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Q 10·4 선언 7주년인데 그래서 왔을 가능성은 없나요?

A 10.4 선언 얘기 당연히 할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6·15, 10·4 다 얘기하겠지만 북한이 그걸 가져가려고 하기보단 이번 회담을 통해 챙겨가려는 게 분명 따로 있습니다. 6·15, 10·4 선언의 전면적 이행은 당장 받아가기 힘들다는 것을 알 테니까요. 결국은 삐라 살포 문제나 조금 더 나가면 5·24 문제 얘기할 것입니다.

Q 정부는 그동안 삐라 살포 민간에서 하는 거라 막을 수 없다고만 해왔는데요?

A 민간에서 하는 걸 막을 수 없다는 걸 북한도 잘 알죠. 핵심은 우리 정부, 특히 군이 관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전에 우리 군이 삐라를 뿌렸던 적이 있습니다. 군이 뿌리지 말고 군사통제지역에 민간인 들어오지 못하게 해라 정도의 요구를 할 것입니다. 민간인 뿌리는 걸 정부가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건 2000년대 들어서 북한에게 누차 얘기했고 그게 헌법상 문제라는 걸 북한도 잘 알 것입니다.

Q 오늘 밤 10시에 가기로 했는데 만약 회담이 잘 되면 일정이 미뤄질 수도 있을까요?

A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표면적으로는 협상하러 온 것이 아니니까요.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