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을 앞둔 살아있는 최고령 소리꾼이 무대에 오른다. 역대 최고의 소리꾼으로 꼽히는 국창 임방울(1905~1961) 선생을 사사한 청강 정철호(87·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고법 예능보유자) 선생이 그 주인공이다. 청강은 25일 오후 7시30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중요무형문화재 전수회관 민속극장 풍류에서 ‘제8회 임방울류 적벽가 연창 발표회’를 연다.
이날 공연에서는 청강이 직접 무대에 올라 소리 한 자락을 선사하고 북까지 칠 예정이다. 이에 맞춰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보유자 후보인 수당 정명숙 선생이 특별출연해 살풀이춤을 춘다. 서울시무형문화재 제32호 판소리 흥보가 보유자인 이옥천 명창은 ‘춘향가’를 부를 예정이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시인이자 국회의원인 도종환씨가 가사를 쓰고, 청강이 곡을 붙인 창작 판소리 ‘맹골도 앞바다의 깊은 슬픔’을 도종환 시인이 낭송한다. 이 작품은 향후 안숙선 명창의 창으로 음반으로 나올 예정이다. 이번 공연은 누구나 사전 예약 없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02-752-9939).
1939년 목포에서 태어난 청강은 열두 살 때 무작정 명창 임방울 선생을 찾아가 큰 절을 올렸다. 제자로 받아달라고 간청하자 소리 한 대목을 시켰다. 소년은 판소리 ‘춘향가’ 중 ‘쑥대머리’를 불렀다. 그렇게 인연이 시작됐다. 운명이었다. 어느덧 75년의 세월이 흘렀다. ‘춘향가’ ‘수궁가’ ‘적벽가’ 전 바탕을 사사하고 임방울의 판소리 맥을 전승·보급시키는 계기가 됐다.
임방울 선생은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에 판소리 명맥을 지킨 대가다. ‘쑥대머리’가 실린 음반은 한국 중국 대만 일본 등에서 120만장이나 팔렸다. 소리로 한 시대를 풍미한 그는 1960년 8월 전북 김제 공연장에서 ‘수궁가’를 부르다 쓰러져 이듬해 3월 7일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청출어람이라고 했던가. 스승은 떠나도 제자는 소리의 맥과 정신을 이어오며 빛내고 있다.
1991년 제1회 판소리 고법 및 임방울류 적벽가 완창 제자 발표회를 시작으로 임방울의 판소리를 잇는 데 전심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번 무대는 그의 제자들과 함께 연창 발표회를 여는 것이다. 임방울 판소리의 예술적 가치를 계승하고 전통예술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서다.
청강은 아쟁산조를 민속음악으로 창시한 까닭으로 여성국극단에서 아쟁 반주의 길을 걷기도 했다. 그런 중에 본격적으로 작곡에 나서 1950년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여성국극 5개 단체와 창극단체의 작창과 작곡을 거의 도맡아 하기도 했다. 이 같은 경험은 새로운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순국열사들의 일대기를 노래한 신작판소리 ‘열사가’,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의 3가지 사랑이야기를 다룬 훈민정음 ‘세종대왕가’를 만들고, ‘신민요’의 음반제작과 보급도 할 수 있었다. 이 모두가 ‘진정한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 ‘인기에 편승하지 말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예술을 하라’는 선생님의 가르침 덕분이라고 그는 말한다.
일제강점기에 판소리로 민족의 아픔을 노래하고 한을 어루만졌던 임방울 선생은 1964년 인간문화재가 생기게 된 계기를 마련했다. 천하의 명창 임방울 선생님이 1961년, 57세의 나이로 갑자기 돌아가시자 판소리 명맥이 끊길지 모른다는 위기감에서 부랴부랴 마련된 것이다. 그런데도 임방울제 판소리가 아직 문화재로 지정받지 못하고 현실이다.
청강은 “스승의 은혜를 갚는 길은 임방울류 판소리를 많은 제자들에게 전수해 선생님 판소리 류파가 문화재로 지정받는 것”이라고 했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을수록 가슴에 사무치는 것은 스승에 대한 그리움과 회환입니다. 또한 수제자인 저로서는 한없이 면목 없고 죄송스런 마음뿐입니다. 임방울제 판소리가 제대로 인정받을 때 대한민국의 판소리가 살아날 것입니다.” 스승의 은혜에 대한 사무친 보은의 무대가 관객들을 애틋하게 한다. 이번 무대의 해설은 박동국 동국예술기획 대표가 맡는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
최고령 소리꾼 청강 정철호 선생 25일 임방울류 판소리 전승무대 도종환 시인 낭송회도
입력 2014-09-25 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