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내가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을 때, 마침 필라델피아를 방문하신 어떤 목사님을 만난 적이 있었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아주 유명한 목사님이 필라델피아를 방문해서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던 신학생들과 만남을 가졌는데, 나도 거기에 참석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린 것이다. 그때 목사님이 자신의 설교 원고라며 꺼내준 조그마한 쪽지는 거기에 참여한 모든 이들로 하여금 놀라움을 자아내게 했다. 손바닥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작은 쪽지에 그 목사님은 세 단어만을 적어 놓았던 것이다.
그 목사님은 보통 설교를 하면 한 시간 이상 많게는 두세 시간씩 설교하는 분으로 유명한 목사님인데, 사실 설교 원고를 준비해서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몇 개의 주제만을 적어놓고 머릿속에서 생각나는 대로 설교하시는 것이다. 혹자는 이를 성령이 인도하시는 대로 설교하는 것이라 말하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 목사님의 설교는 녹취가 돼 책으로 만들어지고 또한 그분의 책들은 우리나라에서 항상 잘 팔리는 책 목록에 오르곤 한다. 그 만큼 읽을 게 있다는 것이고, 내용이 뛰어나다는 것이 일반인들의 평가일 것이다.
나는 그렇게 못한다. 나는 설교를 할 때 원고에 미리 준비한 것만을 전하고 원고에 준비하지 않은 내용은 거의 전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나는 설교 한 편을 준비하는데 많은 시간을 쏟아 붓고 있다. 목사 안수를 받은 이래 지금까지 약 사반세기동안 설교해 왔지만 단 한 편의 설교도 준비 없이 그냥 나가서 설교한 경우는 거의 없고, 예전에 했던 설교 원고를 그냥 다시 들고 나가 설교한 적도 없다. 한 편의 설교를 하기 위해서 나는 나름대로 피나는 노력을 쏟아 붓고 있다. 나도 그 목사님처럼 해보고 싶지만 체질상 그렇게 잘 안 되나보다.
그 목사님이 그렇게 설교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 내가 설교를 준비하는 것 이상으로 평상시에 성경을 묵상하고 많은 독서를 했기 때문일 것이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항상 내면화된 묵상을 말할 수 있도록 내적인 실력을 닦았기 때문이다.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는 연주를 앞두고 많은 연습을 하지만 그런 후에도 실제 연주회에서 아름다운 연주를 잘 보여주지 못하는 반면, 프로 바이올리니스트는 연주회를 앞두고 사전 연습을 하지 않고 바로 연주회에 들어가도 정말 멋진 연주를 들려줄 수 있는 것과 같다. 실제로 십여년 전에 보스턴 심포니의 바이올리니스트인 어떤 분이 우리 가정을 저녁식사와 연주회에 초대한 적이 있었는데, 그분은 여유 있게 우리와 함께 저녁 식사를 마치고 연주회 시작 10분전에 연주회 장소에 도착하는 게 아닌가? 그런데 우리 앞에서 연주하는 그 음악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음악이었다. 교회 성가대에 설 때든, 학교 합창단에서 연주를 할 때든, 항상 연주회를 앞두고 열심히 연습하는 것을 철칙으로 알고 있었던 내게는 아주 큰 충격이었다.
그 목사님은 늘 책과 씨름하면서 공부하는 목사님으로 알려져 있었고, 그 목사님은 그가 쌓은 평상시의 영성으로 말씀을 전하였던 것이다. 그 분은 지금 신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목사님 가운데 한 분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우리에게 단기간의 준비도 필요하지만 꾸준히 바른 신앙적 훈련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에 교사들을 위한 교회론 세미나가 우리 교회에서 다시 개설됐는데, 교사들은 물론 많은 분들이 이 세미나를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뿐만 아니라 교회 내에서 교육 프로그램들이 있다면 많은 분들이 참여하길 기대한다. 특히 주일학교 교사들은 그 목사님이 평상시 준비를 하듯이, 영적인 실력을 키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사들은 주일학교에 와서 성경적인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엉뚱한 이야기를 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성경적인 생각과 신앙에 훈련되어 있기보다는 전통이나 비성경적인 생각에 너무 깊숙이 배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고 말을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비성경적인 생각과 바람직하지 못한 전통적 생각에서부터 나오는 이야기를 주일학교 학생들에게 들려줄 수 있다. 마치 그 목사님이 그 동안 쌓은 영성으로부터 깊은 신앙적 메시지를 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들은 그 동안 쌓아온 비신앙적인 훈련으로부터 나오는 잘못된 메시지들을 전할 가능성이 많다. 그래서 우리는 부단히 배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사탄이 우리 손에 들려준 원고에 따라서 사탄의 마음에 맞는 말들만을 다음 세대들에게 전해주고 말 수 있다.
교사만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비신앙적인 생각들에 너무 많이 노출돼 있어서 우리를 건들면 비신앙적인 생각들이 쏟아져 나오게 돼 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 말씀의 훈련을 해야 한다. 성경을 매일 묵상하면서 나의 비신앙적인 생각과 성품들을 고쳐나가야 한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나의 모습이 주님을 닮아가도록 우리를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
대구남부교회 이국진(사진) 목사
대구=최일영 기자 mc102@kmib.co.kr
[목회자칼럼]대구남부교회 이국진 목사 "그 목사님의 설교 원고"
입력 2014-09-22 14: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