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식당, 멕시코 한류 팬들의 주말 아지트…수다 내용 들어보니

입력 2014-09-19 00:30

멕시코 한류팬들의 '시끌벅적' 라면가게 수다

멕시코시티 시내에 '주말 아지트'…"2PM 왔으면…"

주말인 지난 14일(현지시간)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의 독립기념탑 인근의 한 한국식 분식점.

좁은 골목길에 자리잡은 '라면가게'(RAMEN HOUSE)라는 상호의 이 분식점 앞에는 여느 주말과 마찬가지로 20대 초중반의 멕시코 남녀 젊은이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 장면이 목격됐다. 가게 안에 자리가 없어 대기하는 행렬이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가게 안에는 이미 70∼80명의 손님들이 삼삼오오 자리를 차지한 채 라면, 떡볶이, 군만두 등을 앞에 놓고 어설픈 젓가락질을 하면서 K팝 스타들을 화제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10명중 9명은 여성이다. 벽에 걸린 TV모니터에서 좋아하는 K팝스타 등의 동영상이 나오면 여기저기에서 수저를 휘두르며 환호성을 내지른다.

가게 주인 얘기로는 '한번 앉았다 하면 3∼4시간'이다. 라면 하나만 시키고 마냥 죽치고 있어도 미안한 생각도 하지 않고, 주인도 불쾌하게 여기지 않는다. 한국 식당을 찾는 멕시코 한류 팬들의 문화이기 때문이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멕시코의 한류 동호회는 세계 최대 규모인 것으로 멕시코 한국문화원은 파악하고 있다.

창고를 고쳐 허름하게 만든 이 분식점은 생긴지 1년도 안 됐지만 소문이 퍼지면서 멕시코 K팝 동호회 등 한류 팬들의 '아지트'가 됐다.

매 주말과 휴일에는 멕시코시티를 포함해 과달라하라, 몬테레이 등 주요 도시들에서 팬들이 모인다.

모임은 얼굴을 아는 친구들끼리, 또는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결성된다.

한국의 특정 가수를 좋아하는 팬클럽이 많이 모여 서로 정보를 주고받고 최신 노래와 CD 등을 교환하기도 한다.



이날 그룹 2PM의 여성팬 10여명이 가게 중간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한 명은 기자가 먹던 떡볶이를 호기심 어린 눈길로 보더니 "맵지 않으냐"고 물어보다가 하나를 주문한다.

이들은 남동부 베라크루스주(州) 등지를 포함해 전국 각지에서 모일 정도로 열성적이다.

멕시코에는 작년 이후 슈퍼주니어, 엠블랙, 샤이니 등 중남미를 순회하는 K팝 스타들의 공연이 이어지고 있다.

멕시코에 공연하러 또 누가 왔으면 좋겠느냐는 물음에 동호회 회원중 한 명인 이르마(22)는 "당연히 2PM"이라면서 너무나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다.

좋아하는 한국 음식으로는 자장면과 비빔밥을 꼽았다. 한국 가수를 좋아하게 되면서부터 한국 음식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6년 전부터 K팝팬이 된 펠릭스 엘가도(26)는 한국 가수가 좋은 점에 대해 "노래를 준비하는 열정이 좋고, 같이 뭉치는 것이 보기가 좋다"고 말했다.

엘가도는 "멕시코에는 아버지가 돈이 많은 가수가 많다"며 "한국은 음악성이 훨씬 발전했고, 노래 내용이 참 우리에게 와닿는 것이 많다"고 했다.

엘가도는 한국의 한 드라마에서 라면을 아주 맛있게 먹는 장면을 보고 젓가락질을 배우기 시작했다.

엘가도와 동갑내기인 아우로라(26)는 "한국 탤런트 윤은혜를 좋아한다"며 "한국에 꼭 가보고 싶다"고 깔깔댔다.

이들은 한국의 K팝스타가 언제 온다는 공연을 입수하게 되면 그때부터 '돈 모으기'가 시작된다.

10만원을 훌쩍 넘는 입장권을 구하려면 몇 개월간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멕시코의 한류는 젊은이들의 생활에 점점 깊이 자리를 잡는 모양새다.

16일에는 멕시코를 방문한 조태용 외교통상부 1차관이 한국문화원에서 한류 팬 클럽을 이끄는 대표격들과 간담회를 했다.

이 자리에는 멕시코 최초의 한류 팬클럽인 '안재욱 포에버 멕시코'의 부회장을 맡은 마갈리 산체스(43)가 참석했다.

산체스는 "12년간 팬클럽을 이끌면서 한류가 발전하는 모습이 기뻤다"며 "처음에는 정보와 언어, 연락망 부재 등 어려운 점이 너무나 많았다"고 회고했다.

산체스는 7년 전 회원들과 한국에 가서 탤런트 안재욱과 여름 캠프를 하기도 했다.

멕시코 제2의 도시 과달라하라에서 그룹 슈퍼주니어 팬클럽 '멕시코 E.L.F'를 이끌면서 다른 30개 팬클럽과의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아렐리스 다니엘라 벨트란 두란(31)이라는 여성도 모습을 드러냈다.

두란은 내년 2월에 콘서트, 태권도, 한글 경연, 사진 전시회 등이 어우러진 페스티벌을 과달라하라의 대학교에서 세 번째로 개최하는 계획을 짜고 있다.

조 차관은 "멕시코에서 한류 열기가 대단하다는 것을 실감했다"며 "앞으로 한류에 대한 애정을 계속 보여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이동경 특파원 hopema@yna.co.kr<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