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추억이나 기억을 저장하는 수단으로 현대인의 필수품이다. 강영길과 고명근 작가의 2인전 ‘The Layers of Memory(기억의 층)’이 9월 17일부터 10월 15일까지 서울 종로구 통의동 아트사이드 갤러리에서 열린다. 사진의 특성을 이용한 작품 17점을 통해 사진이 다른 미술 장르와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생각해보고 추억과 기억을 담은 새로운 공간을 창조해 보이는 전시다.
19세기 초, 카메라의 발명이 미술에 끼친 영향은 이전 미술이 추구하던 미의 정의와 기준을 바꾸었다. 하지만 사진이 새로운 예술 표현의 수단으로 미술의 한 영역을 차지하기까지 회화와 조각 등 전통적인 표현 방식과 경쟁했다. 최근 들어 사진, 회화, 조각 등 장르를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사진을 이용해 작업하는 두 작가의 전시는 미디어로서 사진의 현재를 살피는 기회다.
두 작가는 모두 현실을 기반으로 한 추억과 기억을 포착한 사진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유사한 지점을 갖는다. 사진 자체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작업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작업 재료로 사진의 메커니즘을 활용하고 있다. 현실과 분리된 영원의 영역, 환상과 같은 모호한 공간을 만들기 위한 여러 층의 개념적 도구들을 사용한다는 점에서도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다.
강영길 작가는 이미지를 재현하는 과정에서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방법으로 사진을 선택한다. 수영장에서 체험한 현실과 분리된 공간, 거기에서 비롯된 고민을 투영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유행했던 회화주의 사진을 떠올리게 한다. 회화적 감성을 사진의 영역에 끌어들인 것이다. 하지만 작가의 작업은 회화주의 사진들과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회화주의 사진이 사진의 예술성을 보여주기 위해 회화적 속성을 빌려왔다면 작가는 개념을 세우고 이미지를 재현하는 과정에서 사진을 활용했다. 작가는 인화지가 아니라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든 한지를 사용함으로써 동일한 이미지의 작품을 거부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수영장 작업을 통해 ‘경계가 무너진 영원의 영역’ ‘소멸할 것에 대한 슬픔’을 이야기한다.
일상적인 공간인 수영장에서 개인적으로 체험했던 ‘현실과 분리된 듯한 혼돈’, 물 밖과 안이라는 다른 공간의 층에서 비롯되는 ‘실존적 고독’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고명근 작가는 현실과 환영 사이, 평면과 입체 사이의 유희를 보여준다. 3차원의 현실을 2차원의 사진으로 전환시키고 그것을 다시 입체적 구조로 만들어낸다. 그 구조물의 형체와 표면의 이미지가 서로 충돌하여 보는 이들을 혼란에 빠트린다. ‘Stairway 13’(2011)와 ‘Building Studies’(2013)는 건축물이지만 바다이기도 하고, 동시에 건축과 물의 환영이기도 하다.
속이 비어 있는 진공 상태의 조각으로 작품 외부를 투영시켜 주위 공간을 작품의 일부로 유도한다. 그래서 보이는 작품과 더불어 보는 사람의 사고와 움직임이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가 된다. 시간성과 장소의 특수성까지 작품 안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작가는 작품을 ‘투명한 용기(transparent container)’라고 일컫는다.
용기는 사진의 환영 이미지를 반복하고 해체시키는 도구이면서 환영과 실재 사이에 혼재하는 뭔가가 된다. 이는 작가의 창의적 공간이다. 보는 이의 시선과 작가의 시선이 어지럽게 교차하며 실재와 환영, 평면과 입체, 재현과 공간, 시간성이라는 미술사의 주요 개념들을 아우르고 있다. 인간의 눈을 대신해서 이미지를 포착하는 사진을 이용해 우리가 보는 것의 환영을 드러낸다.
현실을 담고 있지만 동시에 비현실적인 것. 강영길 고명근 두 작가의 작품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한다(02-725-1020).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
사진 활용 기억을 반추하는 강영길 고명근 2인전 9월17일부터 10월15일까지 아트사이드에서 전시
입력 2014-09-17 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