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안전띠 매지 않은 사고에도 보험금 전액 지급 첫 판결

입력 2014-09-16 13:43
벤처박람회에서 관람객들이 어린이 및 여성운전자용 안전벨트 버튼후크를 보고 있다. 사진은 기사내용과 관련없음. 국민일보DB

안전띠를 매지 않았어도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하거나 상해를 입었다면 보험금을 전액 지급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이는 첫 판결로 기존 자동차보험 표준약관을 개정해야 할 중요한 판례다.

대법원 3부(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박모(43)씨가 흥국화재 해상보험을 상대로 낸 보험금 소송에서 사실상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박씨에게 보험금을 지급하라”며 원고승소 취지로 서울중앙지법 합의부로 돌려보냈다고 16일 밝혔다.

박씨는 지난 2009년 8월 흥국화재의 자동차종합보험에 가입했다. 자동차 사고로 자신이 다칠 경우 최대 4500만원까지 보상해주는 ‘자기신체사고’ 부분에는 안전띠를 매지 않을 경우 일부 공제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박씨는 그해 9월 음주 운전하다가 도로 오른쪽 옹벽과 중앙선 가드레일을 잇따라 들이받고, 안전띠를 풀고 앉아있다 뒷차에 추돌당해 크게 다쳤다.

이에 대해 보험사가 보험금 20%를 감액한 3600만원만 지급이 가능하다고 통보하자 소송을 냈다.

1·2심은 보험사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안전띠를 매지 않고 운전하는 사람은 '교통사고를 당해 심하게 다쳐도 어쩔 수 없다'는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봤다. 박씨의 과실 아닌 고의로 상해를 입었고, 표준약관도 유효하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안전띠를 착용하지 않은 것이 보험 사고의 발생 원인으로 고의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없고, 이 사건 약관은 상법 규정에 반해 무효다"며 박씨 손을 들어줬다.

박씨를 대리한 박기억 변호사는 "보험사 표준약관 일부를 무효로 본 대법원 판결이 약 20년 만에 나왔다"며 "자동차보험 표준약관을 개정해야 할 매우 중요한 판결이다"고 평가했다.

박 변호사는 "기왕증(과거에 걸렸던 질병)이 있을 때 보험금을 감액하도록 한 자동차보험 표준약관 등 아직 법리에 반하는 약관이 존재한다"며 "조금씩 개선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덧붙였다.

최영경 기자 yk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