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개입은 맞으나 선거법 위반은 아니라는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에 대한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이범균 부장판사)의 판결에 대해 같은 현직 부장판사가 정면으로 판결을 비판하고 조롱하는 글을 올렸다. 주인공은 사법연수원 25기 수원지법 성남지원 김동진 부장판사다. 하지만 대법원은 김 부장판사의 글을 직권으로 삭제해 일을 더 크게 만들고 있다. 또 다른 사법 파동으로 번질 조짐마저 일고 있다.
김 부장판사는 전날 이 부장판사의 원세훈 전 국정원장 집행유예 판결에 대해 “국정원이 대선에 불법 개입한 점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라며 “이번 판결은 지록위마(指鹿爲馬·권력이 무서워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답한 고사에서 유래한 사자성어) 판결”이라고 했다. 좀처럼 다른 재판부의 판결을 언급하지 않는 판사들의 관행에 비추어 볼 때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또 글을 올린 김 부장판사가 연수원 21기인 이 부장판사보다 4기수 후배라는 점에서 서열을 중시하는 법조계에서 역시 이례적 일로 꼽히고 있다.
지록위마 삼척동자를 동원한 김 부장판사는 글에서 조롱을 멈추지 않았다. 이 부장판사를 향해 “정의를 위한 판결인가, 승진 심사를 목전에 두고 사심을 담아 쓴 판결인가”라고 물었다. 이어 곧바로 김 부장판사는 “나는 후자라고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이 글의 제목은 ‘법치주의는 죽었다’였다.
판사들을 관리하는 대법원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이런 내용의 글이 올라온 것은 맞다”라고 확인하면서도 “현재 대법원이 직권으로 글을 삭제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법원 내부 게시판인 코트넷에 현직 부장판사의 글을 삭제하는 일 역시 이례적 모습이다. 코트넷은 판사들의 글 뿐만 아니라 법원 직원들이 자유롭게 의사를 나타내던 소통의 장소였다.
우성규 나성원 기자 mainport@kmib.co.kr
대법, 원세훈 판결 ‘지록위마’ 비판 김동진 부장판사 글 직권삭제…이래도 되나
입력 2014-09-12 14: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