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신학의 거장, 판넨베르크 별세

입력 2014-09-11 09:51

몰트만과 함께 ‘희망의 신학’ 제창자였던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가 지난 5일 별세했다. 향년 86세.

현대신학의 거장으로 손꼽혔던 그는 ‘역사로서의 계시’(1968)를 필두로 ‘기독론의 근본 질문’ ‘신학과 하나님의 나라’ ‘신학적 전망에서 본 인간론’ 등 600편의 저술을 남겼다.

그는 ‘역사로서의 계시’에서 계시가 역사 과정의 자체 내에서 분별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역사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부활 속에서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는 신학 방법론 문제를 관심 있게 연구했으며 최근엔 기독교 신학과 자연과학의 상호작용에 대해서까지 논의를 확대시켰다.

그는 신학을 보편과학의 하나로 이해했다. 신학은 개인이 갖는 신앙 고백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 이성에 기초한 일반 학문의 영역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는 것으로 신학의 목적은 진리를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판넨베르크 신학 핵심은 종말론적 존재론과 하나님 이해였다. 하나님의 초월성은 그의 미래이자 완전성이며 미래는 모든 현재에 대해 지배하는 힘을 가졌기 때문에 현재를 규정하고 결정짓는다고 봤다. 그러나 하나님의 초월성은 현재와 상충하기보다는 완성시키며 하나님의 영을 통한 내재성은 피조세계의 풍성한 연합을 증대시킨다고 주장했다.

칼 바르트의 저작을 통해 영향을 받은 그는 1950년부터 바젤에서 바르트에게서 직접 수학했다. 이런 과정에서 그는 스승과는 달리 하나님의 계시 역사는 이 세계와 상반된 것이 아니라 피조 세계의 완성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모든 종류의 세속적 경험 안에서도 신앙적 암시를 주는 것들을 끌어내고자 했다.

바른 기독교 신앙은 인간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영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요구하며 따라서 교회는 언제나 사회가 하나님 나라 삶의 원리를 실천해 갈 수 있도록 가르치고 비판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16세 때 도서관에서 니체의 책과 만나면서 기독교의 영향 때문에 세계가 비참해졌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독일 고백교회 신자였던 고등학교 문학 교사를 통해 니체와는 다른 기독교를 발견하면서 신학을 공부, 기독교가 최고의 철학이라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청소년 시절 어느 겨울 오후 해질 무렵 숲을 지나 집으로 돌아오던 중 경험한 한줄기 빛은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으로 회자된다. 당시 그는 멀리서 비치는 한 빛에 이끌리며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는데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음에도 자신의 삶을 요구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체험을 했다.

1928년 독일의 스테틴에서 태어난 그는 훔볼트대학과 괴팅겐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1950년 칼 바르트 밑에서 ‘교회교의학’을 공부했다. 1958년부터 3년간 부퍼탈에 있는 신학교에서 몰트만과 함께 조직신학 교수로 일했다. 68년부터는 뮌헨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94년 정년 퇴임할 때까지 조직신학을 가르쳤다. 미국 시카고대와 하버드대, 클레어몬트신학교 등에서 교환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2001년 11월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던 그는 창조와 진화, 종교와 과학, 기독교와 이슬람 등 현대 신학의 쟁점을 정면으로 다루며 신학이 다른 학문과 통합을 이루어가야 한다는 도전을 던졌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