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소백산은 사과향이 가득하다. 야영장으로 향하는 길도, 부석사로 오르는 길도 온통 절정을 뽐내는 사과들로 빨간 점점이 새겨져 있다. 선비의 고장답게 영주에는 서원과 고택들이 즐비하다. 소수서원 너른 마당을 뒷짐 지고 걷다보면 어느새 500년 전 선비처럼 걸음걸이가 느려지고 품위가 따라온다. 오곡백과와 온갖 과일이 영글어 가는 가을이 오면 아기자기한 삼가 야영장으로 텐트를 지고 떠나보자. 야영장 가운데 졸졸 흐르는 시냇물에 아이와 꼬깃꼬깃 접은 종이배를 둥둥 띄워보자. 그 배는 행복을 싣고 멀리 멀리 여행을 떠난다.
◇소백산의 정기를 받은 아기자기한 야영장- 소백산 삼가 자동차야영장= 소백산 삼가 야영장은 40여동 규모의 아담한 국립공원 캠핑장이다. 해발 1439m의 소백산 자락에 살포시 자리 잡은 삼가 야영장은 비로봉으로 오르는 등산로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샤워와 전기 사용이 가능하며 깨끗하게 관리가 잘 되고 있다. 근처 볼거리도 많아서 국립공원 야영장 중 손에 꼽히는 인기 캠핑장이다.
소백산 삼가 야영장의 백미는 중앙에 흐르는 작은 시냇물이다. 인공적인 시냇물이지만 아이들의 동심을 자극하는 멋진 놀이터다. 졸졸 흐르는 시냇물에서 차박차박 걷는다. 한 여름 계곡의 시원함에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초가을 더위를 날리기에는 충분한 시원함이 있다. 작은 종이배 하나 접어서 띄우면 어느새 잘도 흘러간다. 아이는 그 배를 따라 즐거운 달리기를 반복한다.
삼가 야영장은 산 속의 야영장이라도 인공적으로 조성한 곳이라 나무가 아직 크지 않다. 초가을 따가운 햇빛을 피하기 위해서는 타프가 필요하다. 등산에 욕심이 있다면 야영장을 출발해 비로사를 거쳐 비로봉까지 약 6㎞의 산행도 도전해 볼 만하다.
◇솔바람에 글 읽는 소리가 퍼지다- 소수서원, 선비촌= 삼가 야영장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후에는 근처 소수서원으로 나들이를 나가자. 500년 전 이곳에는 글 읽는 소리가 울러 퍼졌을 것이다. 소수서원으로 들어서는 입구부터 ‘학자수’라는 별명을 가진 소나무 숲이 지조 있게 반긴다. 소나무 숲까지 선비의 향이 전해진다.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으로 중종 37년(1542년) 풍기 군수인 주세붕이 고려 말 성리학자인 안향을 기리고자 세운 백운동 서원에서 출발한다. 지금으로 말하면 일종의 사립학교다. 사액서원은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 등 일정 보조를 받는 형태다. 그 때 당시에는 수많은 실력 있는 학생들이 모여 학문을 닦으며 수행했을 곳이다.
영주는 소수서원을 비롯한 많은 서원들이 있는 선비의 고장이다. 최초의 성리학자였던 안향의 고향이기도 한 순흥에 선비들의 정신을 담아 선비촌이 조성됐다. 소수서원과 선비촌, 그리고 유교박물관인 소수 박물관은 모두 한 울타리 안에 있다. 일종의 테마공원의 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매표소에서 통합 입장권을 발매하면 세 곳을 모두 돌아볼 수 있다. 선비촌은 선비들 삶의 현장을 보여주는 곳이다. 정취 있는 돌담길을 걷다보면 종가집도 있고 초가집도 있어서 각 신분에 맞는 다양한 가옥을 형태를 구경할 수 있다. 중간 중간에 심심하지 않게 사진 찍을 장소도 마련해 놓았다.
◇눈이 확 트이고 마음이 열리는 곳- 부석사= 소백산 정기를 받아 편안한 밤을 보내고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대표사찰 부석사로 향하자.
부석사로 오르는 길에 초가을 사과가 주렁주렁 탐스럽다. 사과밭을 쭉 따라 가다보면 우뚝 솟은 당간지주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몇 계단을 오르면 천왕문이 나오고 그 후에 범종루, 안양루, 무량수전까지 수직으로 차례차례 등장한다. 산비탈에 위치한 지형상 오르는 길은 조금 벅차다. 하지만 다 올라 안양루에서 바라보는 전망에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마치 로켓이 발사되는 순간처럼 가슴 속에 쨍한 느낌이 든다. 확 터진 시야에 올록볼록 산등성이들이 반갑게 손을 흔들고 있다. 누구나 이곳에 서면 속세를 떠나 천상으로 갈 것이다.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절이다. 대표적 목조건축물인 ‘무량수전’을 비롯해 많은 국보와 보물을 보유하는 있는 곳으로 아이들과 보물찾기 하듯이 문화재를 찾아보면 재미있다. 특히 아이들은 역사책 속 사진으로만 보던 실제 건축물을 직접 보는 희열을 느낄 수 있다. 가운데가 블록하게 나온 무량수전의 ‘배흘림 기둥’은 특히 눈여겨 봐야할 것이다. 단정하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간결함, 절제된 균형과 꼼꼼함. 부석사의 모든 것들은 선비의 정신을 닮아 있는 듯하다.
[먹거리- 풍기 인삼 도넛]
유명한 풍기 인삼과 서양의 도넛이 만났다. 서양 간식거리인 도넛에 우리의 인삼을 넣은 색다른 도넛이 유명하다. 처음에는 인삼 도넛이 주가 됐지만 이제는 생강, 영주 사과를 넣은 다양한 도넛을 선보이고 있다. 영주에 간다면 잊지 말고 찾아가서 먹어보자.
정 도너츠 (영주시 풍기읍 산법리 342번지)
글 안윤정(루피맘), 사진 서은석(실버스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