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만나카페에선 속성 추석요리 강습회가 열렸다. 일본과 파키스탄에서 온 유학생들이 참여했다. 강사는 자스타(JASTA·Japaness Students Abroad) 대표 구드보라(65) 선교사. 보조 요리사는 예마르다(본명 야마우치 마끼꼬·24·여) 간사다.
“7색 송편을 만들거예요. 직접 뜯은 쑥은 삶아서 칼로 다져요. 떡집에선 쌀과 쑥을 같이 넣고 빻는데, 이렇게 칼로 다져 반죽하면 향긋한 쑥 냄새와 함께 씹히는 맛도 있어 좋아요.”
색동 앞치마를 두른 유학생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구 선교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참깨와 녹두 소를 넣은 7색 송편을 만들었다. “떡이 한입에 쏙 들어가니 더 맛있다”며 유학생들은 연방 송편을 입에 넣었다. 유쾌한 송편 만들기 속성 코스는 3시간여 만에 끝났다.
30평이 조금 넘는 만나카페는 자스타에서 운영하는 유학생 사랑방이다. 자스타는 재한 일본 유학생 및 외국인 학생들에게 한국 문화를 소개하고 복음을 전하는 유학생 선교단체다. 장신대 등 신학대학원 학생들이 일본 복음화를 위해 2005년 설립했다. 동역자로 사역을 돕던 구 선교사가 대표를 맡게 됐다.
만나카페는 ‘와이파이존’이다. 스마트폰을 많이 사용하는 젊은 학생들을 위한 구 선교사의 배려다. 카페 한쪽에는 주방이 있고 컴퓨터도 놓여 있다. 판매를 위해 막 구워낸 호두과자도 보였다. 유학생을 위한 소식지나 안내책자도 가지런히 꽂혀 있다.
-만나카페가 대로변에 있는 것도, 인근 대학에서 가까운 것도 아닌데 유학생들이 어떻게 알고 찾아오나요?
“2006년 2월부터 매년 연세대에서 외국인 유학생을 대상으로 자스타 행사를 열었어요. 해외에서 열리는 ‘코스타’ 집회와 비슷해요. 이름도 비슷하잖아요(웃음). 유학생들이 학기 초에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학교생활이 달라져요. 술 먹는 친구를 만나면 계속 술을 마실 것이고, 자스타를 만나면 예수님을 알게 되지요. 자스타에 가면 한국 문화를 배울 수 있고, 좋은 친구도 사귈 수 있으며 무엇보다 복음을 들을 수 있다는 게 소문이 난 것 같아요.”
-그렇게 모인 학생들이 얼마나 되나요?
“많게는 20~30명이 매주 화요일 기도 모임에 나옵니다. 그런데 오다가다 들르는 곳이라 대중없어요. 하루는 시커먼 남학생 둘이 불쑥 찾아오더니 자취집에 불이 나갔다고 도와달라는 겁니다. 집주인을 불러줄까, 전기 기술자를 불러줄까 물으니 먼저 와서 봐달라는 거죠. 그래서 예 간사가 그 집에 가서 잠시 기도를 드린 뒤 두꺼비집을 열고 스위치를 켰데요. 물론 불이 들어왔지요. 연세대에서 박사 과정 밟는 친구들인데 제게 그러더라고요. ‘엄마? 기도하면 하나님이 다 들어주네요.’ 여기 아이들은 저를 엄마라고 불러요(참고로 구 선교사는 독신이다). 네팔에서 온 학생 부부가 석달 전 둘째를 출산할 때 제가 친정엄마처럼 돌봐줬어요. 만나카페가 그런 곳이에요. 집 같고, 어려울 때 달려올 수 있는 곳이요.”
‘한가위 큰잔치’도 그래서 시작했다. 2010년 여름, 지인 결혼식 참석을 위해 구 선교사는 버스를 타고 강원도로 가던 중이었다. 옆에 파키스탄에서 온 남학생이 앉아 있었다. “추석 때는 뭐하냐”고 물었는데, 학생의 답이 구 선교사 마음에 콕 와서 박혔다. “한국인들은 명절에 가족 만나고 맛있는 음식 먹잖아요. 저희는 더 쓸쓸해요. 학교 식당도 문 닫고, 먹을 곳이 마땅치 않아요.”
평소 교제해온 유학생 외에 더 많은 학생들을 불러 명절을 같이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파키스탄 남학생도 왔다. 그렇게 모인 유학생이 10개국에서 온 120명. 같이 송편을 만들고 전도 부쳤다. 유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불고기 잡채 비빔밥은 기본. 이듬해 설날에는 떡국도 준비해 명절 잔치를 이어갔다. 작년 추석 때는 300여명의 유학생들이 참석했다. 올해도 6일 오후 12시 서울 서대문구청 대강당에서 외국인 유학생을 위한 한가위 큰잔치 ‘마이 프랜드 페스티벌(My Friend Festival)’을 개최한다. 구 선교사는 이 모든 사역이 “씨를 뿌리는 작업”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결실은 맺었나요?
“우리 예 간사가 첫 열매지요. 한국에 유학왔다가 요리사 자격증도 따고 2006년부터 지금까지 저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일본에서 부모가 자녀를 한국으로 유학보낼 때 강조하는 게 ‘교회에 나가지 말라’는 겁니다. 예 간사도 그랬고요. 이슬람권에서 온 학생들은 더 심하죠. 복음은 강요해서 받아들이는 게 아니잖아요. 슈퍼주니어가 좋아 Y국에서 유학온 여학생이 있어요. 머리에 히잡을 쓰고 카페에 오는데, 모슬렘이죠. 같이 찬송 부르고 예배를 드리다가도, 저기 한쪽에서 방석 깔고 엎드려 기도해요. 주님께 예배하는 공간이지만 그렇다고 그 학생을 쫓아낼 수 있나요? 그냥 둬요. 여기 와서 우리가 하는 일을 보면 스스로 느낄 거라고 생각합니다.”
만나카페에선 매주 수요일 일본어 성경보기, 목요일 바이블 스터디, 금요일 요리교실이 열린다. 일본 동경농대 대학원에서 영양학을 공부한 구 선교사는 요리 연구가다. 요리로 복음을 전한다. 자스타에 헌신하기 전까지 대학에서 영양학, 조리학을 강의하는 등 잘나가는 요리강사였다.
-유학생 선교에서 가장 필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슬람권에서 온 유학생들을 만나면 마음이 아파요. 공부를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가기를 두려워합니다. 기독교로 개종했다고 소문이 난 순간 목숨을 부지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지요. 며칠 전에도 T국과 P국에서 온 여학생들과 한참 이야기를 나눴어요. 종교탄압으로 이슬람국가에서 연간 1000명 넘게 살해 당하는데, 특히 여성을 향한 핍박이 심하다며 한참을 울었습니다. 강한 믿음을 달라고 매일 기도합니다. 옆에 있는 동안 따뜻하게 보살피며 용기를 주는 게 저의 일이지요.”
10년을 한결같이 유학생들 엄마로 살아온 구 선교사가 잠시 쉼을 생각하고 있다. 지난해 추석 행사를 마치고 좀처럼 피로가 회복되지 않아 병원에 갔는데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 종양의 사이즈가 커서 수술을 포기했다. 처음으로 안식년을 고민 중인 그에게 소망을 물었다.
“누가 그러더라고요. 다른 게 기적이 아니라, 자스타 사역을 10년간 끌고 온 게 기적이라고요. 정기 후원자가 있는 것도, 인맥이 넓지 않아 교회들을 찾아다니지도 못해요. 그런데 지금 이 자리에서 6년 동안 월세 내가며 만나카페 운영하는 것도 그렇고, 명절 큰잔치를 치루는 것도 그렇고, 하나님이 다 해주셨어요. 다른 것 말고, 대형 음식점에서 명절 때 외로운 유학생들 초청해 갈비탕 한 그릇씩 대접했으면 좋겠어요. 라면 회사에서 유학생들에게 라면을 후원해주면 이들이 자기네 나라에 가서 얼마나 한국 라면을 홍보할까요? 조금씩 마음을 나누는 신앙인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에게 중한 병은 뒷전인 듯했다.
노희경 기자
해외 유학생들 '엄마'의 특별한 명절나기
입력 2014-09-05 10:33 수정 2014-09-05 10: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