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땅에 첫발을 내디딘 ‘빈자(貧者)의 성자’ 프란치스코 교황의 첫 일성(一聲)은 ‘화해와 평화’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4일 오전 서울공항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영접을 받는 자리에서 “(한반도 평화와 화해를)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하고 왔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이 “이번 방한을 계기로 우리 국민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전해지고 분단, 대립의 한반도에 평화와 화해의 새 시대가 열리기를 바란다”고 한 인사말에 대한 화답이었다.
언제나 그늘진 곳에서 소외됐던 이들을 돌봐왔던 교황은 이번에도 소탈한 평소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다. 교황 사제복인 흰색 수단(Soutane)을 입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전 10시16분쯤 서울공항에 도착한 특별기에서 내려 천천히 한걸음 내디뎠다. 올해 78세의 고령인 탓에 몸이 불편한 듯 이따금 쉬기도 했지만 입가에는 인자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교황은 박 대통령은 물론 마중 나온 한국 천주교 주교단 대표, 정부 주요인사, 국민 대표들과 차례로 인사를 나눴다. 한 명 한 명 손을 잡고 고개를 숙여 인사말을 건넸다.
박 대통령은 먼저 스페인어로 “비엔베니도 아 꼬레아(Bienvenido a Corea·오셔서 환영합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이어 “교황을 모시게 돼서 온 국민이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교황은 “저도 기쁘게 생각합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도 많은 한국인이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교황은 아르헨티나 출신이다.
박 대통령이 “편안한 일정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라고 말하자 교황은 “감사합니다. 그동안 베풀어주신 배려를 느끼고 있습니다”라고 화답했다. 박 대통령은 교황에게 “노스베모스 루에고(Nos vemos luego·나중에 뵙겠습니다)”라며 다시 스페인어로 인사를 전했다. 교황의 통역은 예수회 차기 한국관구장인 정제천(57) 신부가 맡았다. 정 신부는 방한기간 내내 교황의 수행비서 겸 통역을 겸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첫 발걸음은 세계적 주목을 끌만한 이벤트 없이 소탈하고 검소하게 진행됐다. 서울공항 환영행사에 나온 이들은 천주교 평신도들 외에도 세월호 희생자 가족, 다문화 가족, 범죄피해자 가족, 장애인 등 소외계층이었다.
환영단과 감격스런 첫 만남을 마친 교황은 자신이 ‘포프모빌(교황차량)’로 선택한 배기량 1600㏄급 국산소형자 ‘쏘울’을 타고 공항을 빠져 나갔다. 국가원수급 인사의 방한이지만 의장대 20여명 배치, 예포 21발 발사 외에 대규모 환영행사는 없었다. 방한기간 교황의 집무실 겸 숙소도 특급호텔이 아닌 청와대 옆 주한교황청대사관이다. 건립 50년이 지난 2층 규모의 낡은 건물이다. 교황은 불가피한 외부 오찬을 빼고는 모든 식사를 이곳에서 할 예정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서울공항 환영행사에 이어 오후 청와대의 공식환영식 참석, 박 대통령과의 면담 및 선물 교환, 박 대통령과의 공동연설 등 방한 첫날 일정을 소화했다.
1984년 가장 먼저 한국을 방문했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도착 장면은 30년이 흐른 뒤에도 많은 국민들에게 각인돼 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당시 특별기 트랩에서 내리자마자 “순교자의 땅, 순교자의 땅”이라며 한국 땅에 입을 맞췄다. 또 유창한 한국어로 “벗이 있어 먼 데서 찾아오면, 이 또한 기쁨이 아닌가”라고 말했었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
프란치스코 교황 “한반도 평화와 화해를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하고 왔다”
입력 2014-08-14 16: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