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평균 초혼 연령은 남자의 경우 32.2세였고, 여자는 29.6세였다고 한다. 1990년만 해도 남자들은 대략 27세 전후로 결혼을 하고 여자들은 대략 25세 전후로 결혼을 한 것에 비하면 5년씩이나 늦게 결혼하는 것이 오늘날의 추세인 것 같다. 이렇게 결혼이 늦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오늘날 사회의 구조 자체가 결혼을 일찍 할 수 없게 만드는 구조로 변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대학을 나오고 국방의 의무를 이행해야 하고 또한 직장을 다니면서 어느 정도 기반을 잡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사회적 구조가 아닌가? 결혼 한 후에 가정을 세워나기기보다는 결혼할 때 이미 어느 정도 갖춰진 상태에서 가정을 출발하려는 사고방식도 결혼을 미루게 되는 요인이 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결혼이 늦어지는 이유는 과연 어떤 사람이 나에게 맞는 배우자인지 고민이 깊어가기 때문일 것이다. 2013년 통계에 따르면 작년 한 해에 32만2800쌍이 결혼을 한 반면, 11만5300쌍이 이혼을 했다고 한다. 이러한 통계는 지난 10여년간 거의 비슷한 수치에 해당한다고 한다. 섣불리 결혼했다가 쉽게 이혼해버리는 것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목격하면서 우리 젊은이들이 결혼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는지도 모른다.
신실한 크리스천의 경우 더욱 결혼에 대한 걱정이 더 많다. 과연 내가 결혼해야 할 배우자인지 아닌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어떤 크리스천 결혼상담가는 잘못된 결혼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미리 결혼을 위해 기도해야 하고, 그것도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연애 공식-크리스천 연애 실용서’(두란노)라는 책을 보면, 배우자를 위해 조목조목 구체적으로 기도하라고 권고한다. 그래야만 정말 세밀한 것까지 응답받는 기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많은 크리스천들이 배우자를 놓고 구체적인 기도제목을 정해 기도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런 기도에 응답해서 정말 기도한대로 정확한 배우자를 만나게 됐다는 간증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만일 내가 결혼할 배우자의 조건을 내걸고 기도하면서 그 조건에 딱 맞는 배우자를 하나님께서 주시기만을 기다리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기도는 내가 원하는 것을 그대로 하나님에게서 받아내는 요술 방망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복권 한 장을 구입한 후에, 하나님께 내가 1등에 당첨된다면 절대로 정욕으로 쓰지는 않을 것이며 오로지 복음을 위해서만 사용하겠다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런 나의 기도에 응답하실까? 절대로 응답하지 않으실 것이라고는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거의 100%에 가깝게 응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결코 복권당첨이 성도에게 유익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내가 기도하면 기도한 그대로 무조건 들어주는 하나님이 아니다.
우리는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야 하고, 그래서 만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다면 우리의 기도 제목을 바꿔야 한다. 그래서 나의 뜻이 이뤄지기를 억지 부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기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대체로 나의 배우자를 위해 기도하는 기도의 제목들은 이기적인 제목들이 많다. 어떤 분의 간증을 들으니, 이렇게 기도했다고 한다. 키는 175㎝ 이상, 뚱뚱하지 않고 세련되며 매력적인 눈에 미소가 아름답고 항상 밝은 웃음을 띤 사람이어야 하고, 한국말과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사람을 달라고 말이다. 물론 이런 기도제목은 10가지 기도제목 가운데 두 가지이고, 나머지 8개는 은혜로운 기도제목들이었다. 물론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솔직하게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 그러나 기도하면서 또 성경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가게 되면서 우리의 기도제목은 바뀌어야 한다. 나의 이기적인 욕심을 채우는 기도제목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제목으로 말이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할 수만 있다면 이 십자가를 지지 않게 해달라고 간구했다. 그것은 솔직한 주님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기도하면서 예수님은 아버지의 마음을 알았고, 그래서 나의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었다. 바울 사도도 역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자신을 괴롭히는 육체의 가시를 없애달라는 기도는 이기적인 기도라기보다는 고통을 당하는 자라면 누구나 드릴 수밖에 없는 기도였다. 육체의 가시는 복음을 전하는 데에도 장애였으니, 이것은 결코 이기적인 기도도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바울 사도는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다. 하나님의 은혜가 바울 사도 자신에게 족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가 배우자를 위해서 구체적인 기도의 제목을 놓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면서 우리의 기도제목을 수정해 나가야 한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고백해야 한다. 아마도 이기적인 생각으로 내걸었던 배우자 조건을 위한 기도제목들은 대부분 수정돼야 할 것이다. 오히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배우자와 합력해 좋은 부부가 될 수 있도록 인내하며 아름다운 가정을 꾸밀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사실 배우자를 위한 기도제목은 두 가지 커다란 오류를 전제한다. 하나는 마치 이 세상에 좋은 배우자가 있고 나쁜 배우자가 있다는 잘못된 전제이고, 또 하나는 좋은 배우자만 만나면 결혼 생활은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환상이다. 절대 그렇지 않다. 이 세상에 좋은 배우자란 없다. 성경은 인간은 철저하게 이기적이고 타락한 존재라고 가르칠 뿐이다. 결혼생활의 성공은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부부가 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는데 있다. 그렇다면 어떤 배우자를 만나든지 내가 사랑하고 인내하며 좋은 가정을 꾸밀 수 있도록 힘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훨씬 더 하나님의 뜻에 가까울 것이다. 결혼은 출발이지 종착점이 아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배우자를 찾을 수 있을까?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해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장 13절)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소원을 주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시는 것이다. 사실 나의 아내가 품고 있었던 배우자를 위한 기도 제목은 돈 많은 장로님이었다고 한다. 신실한 장로님으로서 주를 위해서라면 언제나 희생을 하는 그런 멋진 장로님이 내 아내의 처녀시절 꿈이었다. 하지만 나를 만난 후 내 아내는 그 기도제목을 포기했다. 그 기도제목이 결코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음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리고 아직까지 우리는 25년 넘게 사랑하며 살고 있다. 정말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뛰어남을 인정하면서 말이다.(사 55장 8~9절)
이국진(사진) 목사
대구=최일영 기자 mc102@kmib.co.kr
<목회자 칼럼>대구남부교회 이국진 목사 "이런 배우자를 만나게 해 주세요"
입력 2014-08-14 1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