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적인 선택이었냐.” “맞다.”
5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만난 가수 김장훈(46)과 기자가 주고 받은 첫 대화였다.
김장훈은 영리했다. 좀 더 과격하게 표현하자면 전략적인 인물이었다. 지난 4일부터 김장훈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단식 투쟁에 나선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김장훈’은 어느 순간 신문의 대중문화면보다 사회면에 많이 나오는 인물이 됐다. 50억원을 기부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기부천사가 됐다. 독도지킴이로 나선 것도 모자라 2007년 서해바다 기름 유출 사고 때도 앞장섰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에서 만큼은 그의 움직임이 굼떴다. 상황에 따라 자신의 역할이 다르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일례로 서해안 기름 유출 사고 당시 그는 발 빠르게 사고 현장을 찾아 기름 제거 작업에 나섰다. 이후 수 많은 사람들이 자원봉사를 하겠다며 서해를 찾았다.
그는 “연예인이면 관심을 끌 것이고 사람들의 참여를 독려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세월호 참사는 달랐다. 당장 그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여기에 해외 공연도 8개나 잡혀 있는 상태였다. 이탈리아 3대 오페라 극장 중 하나인 베네치아의 라 페니체 공연도 그 중 하나였다. 라 페니체는 대중 가수들에게 쉽게 무대를 허용하지 않는 곳이지만 극장장이 김장훈의 공연을 보고 직접 공연을 요청했다. 세월호 사고가 있던 날도 그는 중국 상하이에서 공연 준비 중이었다.
초기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사고는 시간이 흐를수록 심각해졌다.
“결국 무작정 한국으로 왔습니다. 라 페니체를 포함해 모든 공연을 취소했습니다.”
일단 한국에 왔지만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침묵하고 있던 김장훈이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한 건 6월5일부터였다. 가장 먼저 안산 분향소를 찾았다. 오해를 받을까 6·4 지방선거 다음날 찾았다. 이후 안산에 네 번 더 갔고 진도도 10번이나 찾았다.
그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한 발 빼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날 수록 이건 아니다 싶었다”고 말했다.
세월호 특별법을 두고 유족들이 지나친 요구를 한다는 왜곡된 정보가 돌면서 사람들의 비난 수위는 높아졌다. 정치인들은 유족들에게 입에 담지 못할 말을 했다.
“보상금 받고 다른 곳으로 떠나면 될 유족들이 왜 굳이 광장에 나왔을까요. 세월호 특별법은 유족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모두를 위한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안전한 나라, 정의를 실현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나온 겁니다.”
그럼에도 김씨는 세월호 특별법을 정쟁에 이용하려는 정치권과 유족들의 행동을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대신 김장훈은 그 시간을 의미있게 사용하기로 했다. 단원고 학생들의 꿈을 대신 이뤄주는 것이다. 이미 그는 故이보미 양의 가수의 꿈을 이뤄줬다.
“한참 꿈 꿀 나이의 아이들이잖아요. 꿈이 없는 아이들이 누가 있겠습니까. 어떤 방식으로든 그 아이들의 꿈을 제가 이뤄주고 싶어요.”
희망은 있다. 사람들이 세월호의 아픔을 기억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날도 광장을 지나던 사람들이 김장훈을 향해 ‘화이팅’을 외쳤고 때론 ‘고맙다’며 손을 꼭 잡으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세월호 사고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큰 아픔을 줬지만 희망도 줬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정치권을 감시하기 시작했고 주변 사람과 ‘더불어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했습니다. 저 또한 예전에 안 하던 가족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김장훈이 꿈꾸는 세상은 무엇일까.
“‘좋은 세상’입니다. 적게 벌어도 행복한 세상이 진짜 좋은 세상 아닐까요.”
6일은 그가 단식을 시작한지 사흘째 되는 날이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세상을 향해 영리하게 외친 김장훈 “전략적인 선택? 맞다”
입력 2014-08-06 19: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