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이지 않았다. 사울은 그렇게 끈질기게 다윗을 죽이려고 달려들었지만, 다윗은 그것을 악으로 갚지 않았다. 다윗은 사울의 옷자락 끝만을 겨우 자르고도 그 마음에 찔렸다.(삼상 24장 5절) 죽이지 않으면 살인이 아니라 마음으로 미워하는 것이 벌써 살인의 죄를 지은 것과 같다는 예수님의 말씀처럼(마 5장 21~26절), 다윗은 마치 자신이 살인죄를 저지른 것처럼 그 마음이 찔렸던 것이다.
다윗이 자신을 죽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사울은 충격을 받았다. 자신은 다윗을 죽이기 위해 진력을 다하고 있는데, 죽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죽이지 않고 간절하게 사울의 양심에 호소하는 다윗 앞에서 사울은 충격을 받았고 눈물을 흘렸다.(삼상 24장 16절) 결국 사울은 다윗 앞에서 다윗이 의로운 자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윗이 결국 왕위를 차지하게 될 것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다윗에게 왕이 되더라도 자신의 가족을 멸하지 말라고 부탁하고 돌아갔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서 사울은 다시 다윗을 죽이기 위해 길을 나섰다. 그때의 그 눈물, 그때의 그 회개, 그때의 그 인정이 모두 가짜였을까? 아니다. 적어도 그때만큼은 진실했을 것이다. 문제는 진정으로 회개한 사울을 사탄은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다시 사울을 충동질해서 그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게 만든 것이다.
이 이야기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이야기다. 우리는 한 번 은혜 받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사탄이 우리를 공격할 때, “당황하지 않고”, “퍽”, “끝”. 이렇게 했으면 좋겠는데, 신앙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기나긴 마라톤과 같다. 마치 아기가 태어나면 그 순간에 뛰기도 하고 걷기도 하고 말도 잘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거쳐 그리고 여러 단계를 거쳐 성장하는 것과 같다.
사울이 다윗의 말에 충격을 받고 회개했다고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가를 알고 성결하게 자신을 돌아보며 믿음을 지켜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 형편이 더 심각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눅 11장 24~26절)
예전 코미디언, 대도(大盜), 살인마 그리고 조폭 두목 같은 사람들이 회개했다고 해서 함부로 목사로 세우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 사람들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됐다는 것은 센세이셔널한 이야기로, 복음의 능력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예로 보여 질 수 있지만, 그렇게 한 번 회개했다고 해서 그들의 신앙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감독 즉 목사의 자격을 아주 까다롭게 규정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새로 믿기 시작한 사람을 세우면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딤후 3장 6절) 믿음은 단기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동안에 세워져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해 달려가노라”(빌 3장 12~14절). 바울과 같은 위대한 인물도 아직 다 이루지 못했다고 고백하면서 믿음의 경주를 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내가 다 이루었다 생각하고 선 줄로 생각한다면 우리는 망하게 될 것이다.(고전 10장 12절) 목사가 되었다고 하는 사실이 이젠 신앙의 최고봉에 올랐다는 증거가 아니다. 장로나 권사나 집사가 되었다고 하는 사실이 이젠 더 이상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증거가 아니다.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믿음의 길을 경주하며 나아가야 한다.
이국진(사진) 목사
대구=최일영 기자 mc102@kmib.co.kr
<목회자칼럼>대구남부교회 이국진 목사 “반복되는 죄와 신앙인격 성숙의 과제”
입력 2014-08-05 14: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