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영광 염산교회에 우리는 천국 간다 시비 세워져

입력 2014-07-30 11:37
전남 영광 염산교회에 77인의 순교자를 기르는 시비가 세워졌다.

염산교회는 “1950년 6·25 한국전쟁 당시 공산군에 의해 성도 77인이 순교를 당한 것을 추모하기 위한 시비를 제작해 최근 제막식을 가졌다”고 30일 밝혔다.

염산교회에서는 한국전쟁 때 공산군의 만행이 자행됐다. 한국 기독교 역사상 최대의 순교자가 발생했다. 염산교회에서는 당시 1대 담임목사 역할을 한 허상 전도사, 2대 원창권 목사, 3대 김방호 목사 등이 모두 숨졌다. 시비는 순교자들이 총과 칼을 든 공산군의 온갖 위협에도 소리 높여 외쳤던 ‘우리는 천국 간다’가 제목이다. 제막식에는 예장 합동 측 총회 임원과 성도들이 참석했다.

염산교회는 일제강점기인 1939년 8월 허상 전도사에 의해 설립됐다. 2대 원창권 목사에 이어 6·25 한국전쟁 때는 3대 김방호 목사가 시무 중이었다. 1950년 초 염산교회에 부임한 김 목사는 경북 경산 출신으로 3·1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였다. 그는 염산교회의 부흥을 이끌던 중 6·25를 맞았다. 공산군은 영광에 들어와 교회당과 목사관을 빼앗은 것도 모자라 기독교를 탄압했다.

하지만 김 목사는 이에 굴하지 않고 교인들의 가정을 돌며 비밀예배를 드렸다. 그해 9·28 서울 수복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영광으로 진격해온다는 소문을 들은 김 목사는 기독교 청년 등을 소집해 다음달인 10월 7일 환영대회를 개최했다. 환영대회는 순교자를 잉태했다. 그 때까지 북한으로 도망가지 못한 공산군 잔당들은 신앙을 사수하려는 교회 신도들에게 보복을 서슴지 않았다. 환영대회를 주도한 목포 성경학교 기삼도 학생이 공산군의 죽창에 찔려 숨진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노용길 등 동료 3명도 새끼줄에 묶이고 돌덩이와 함께 교회 옆 바다에서 수장됐다. 이어 노병재 집사 부부 등 일가족이 같은 방법으로 숨졌다. 같은 달 13일에는 허상 전도사 부부가 돌무더기에 깔려 순교했다.

허 전도사는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기독교 신앙을 가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공산군들은 어린아이까지 무참히 수장시켰다. 죽음을 앞둔 어린아이가 칭얼대며 울자 등에 이 아이를 업고 있던 언니는 “울지 마라 우리는 곧 천국에 간단다”라고 달랬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염산교회는 전체 교인의 3분의 2 정도가 목숨을 잃었다. 시비는 바로 어린아이와 언니의 일화에서 제목을 따왔다. 시비 제막식에 앞선 예배에서 예장 합동 총회 증경총회장인 홍정이 목사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았던 염산교회 77인의 순교자들은 오직 하늘나라의 면류관을 사모하고 주님을 사랑한 참된 신앙인이었다”며 “그 신앙을 본받아 예수님과 하늘나라를 바라보고 교회를 사랑하는 신앙인이 되자”고 말했다.

예장 통합 측은 염산교회를 국가사적지로 지정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월간목회 사장 박종구 목사에 의해 헌정된 ‘우리는 천국 간다’ 시의 시비는 한국기독교역사문화관 관장인 박경진 장로의 후원으로 건립됐다. 시와 함께 77인의 순교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후세에 영원히 잊지 못할 신앙적 자긍심을 심어준 염산교회에는 마지막 순간까지 당당하게 신앙을 지키려던 순교자들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이에 따라 매년 전국 각지에서 수천여명의 순례객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찾아와 순교자들의 신앙적 절개와 교훈을 되새기고 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