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세계의 몰락과 게르만민족의 대이동기에 점철된 혼돈은 8세기 후반 프랑크왕국의 카롤링거왕조(Carolingian dynasty)가 등장함으로 비로소 극복된다.
부친 피핀왕의 뒤를 이은 카알대제(Karl der Grosse, Charlemagne)는 서유럽 대부분의 지역을 포함한 통일된 제국을 건설함으로 세계 제국이라는 고대의 사상을 부활시킨다.
콘스탄티누스대제와도 같이 기독교를 통해 제국을 통합하려한 그는 모든 피정복민들을 기독교로 개종시켰으며 정치적으로 교황권과 프랑크족의 강력한 연계를 이룬다. 마침내 주후 800년 12월 25일 성탄절에 교황 레오 3세로부터 황제관을 받음으로서 카알대제는 서구 기독교의 수호자로 즉위한다.
이는 서유럽이 동로마(비잔틴제국)의 영향에서 완전히 독립하였음을 의미하며 동시에 서로마제국의 부활을 상징하였다.
카알대제는 정치적인 안정 외에 고대 고전문화의 부흥을 이루는데 이를 카롤링거 왕조의 르네상스(Carolingian renaissance, 15-16세기의 대문자로 시작되는 르네상스 Renaissance와 구별)라 한다.
그리고 이 시기의 미술을 카롤링거왕조의 미술(Carolingian Art, 780-900년)이라 부른다.
2. 당시 프랑크왕국의 수도 아헨(Aachen)에 세워진 궁정교회(Pfalzkapelle, 792-805)는 서로마제국의 옛 수도 라벤나의 산비탈레성당(San Vitale)을 모범으로 지은 교회건축물로 카알대제가 서로마제국의 계승자임을 상징한다.
(사진1) 궁정교회(Pfalzkapelle), 792-805년, 아헨(Aachen), 독일
이 교회는 팔각형의 기초 위에 기둥을 세우고 2층의 화랑이 돔을 지지하는 산비탈레성당(San Vitale)의 중앙집중식 교회건축양식(central-plan church)을 모범으로 하였다.
교회 중심부는 산비탈레를 본 따 팔각형(Oktagon)을 이루고 그 둘레로 16각형 회랑이 놓였다.
그러면서도 단순히 고전양식의 반복이 아닌 게르만문화 특유의 생동감(다이내미즘)이 기독교적으로 해석되어 가미된 중세건축의 특성을 보여준다.
(사진2) 궁정교회(Pfalzkapelle) 내부, 792-805년, 아헨(Aachen), 독일
동시대에 지어진 독일 로르쉬 수도원의 문루(Torhalle)는 아치형의 고대 개선문을 모방한 것으로 의도적으로 고전양식을 강조하였다.
수도원 문루 정면의 콤포지트 양식(composite order)의 주두와 벽면을 장식하는 이오니아 양식(ionic order)의 형태는 고대의 건축 표현법을 재생하려한 카롤링거 르네상스의 성격을 잘 나타낸다.
(사진3) 수도원 문루(Torhalle), 800년 경, 로르쉬(Lorsch), 독일
(사진4) 수도원 문루(Torhalle) 세부, 콤포지트 양식(composite)의 주두와 이오니아 양식(ionic order) 형태의 벽면 장식
3. 왕립수도원인 로르쉬 수도원(Kloster Lorsch)에서 제작된 필사본 성경의 표지를 장식하는 상아조각은 카롤링거 미술이 고대 고전(Greco-Roman)미술 외에 당대의 동로마 비잔틴미술의 영향도 함께 받았음을 나타낸다.
중앙의 성모는 천상의 옥좌에 앉아 왼손으로 아기예수를 안으며 오른손으로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전형적인 비잔틴 양식의 성모상 즉 호데게트리아(Hodegetria, 이 분이 길임을 가리킴) 도상을 지니고 있다.
중앙의 성모자를 좌우의 성인들이 보좌하고 있는데 이러한 양식과 구도는 비잔틴양식의 직접적인 영향을 반영한다. 반면에 맨 아래쪽의 조각들은 고전 양식을 지니고 있다.
(사진5) 로르쉬 복음서(Lorscher Evangeliar), 상아부조, 810년경, 빅토리아와 앨버트 박물관, 런던
그 당시 수도원은 암흑시대에 유일하게 고전문화를 전수해온 문화적 구심체로서 수도원학교에서의 귀족자제교육을 통해 관리가 양성되었으며 관리의 대부분은 성직자들이었다. 그들은 고대 로마제국의 재흥이라는 정치적 이념의 구현을 그리스·로마 고전문화의 부활, 카롤링거 르네상스운동으로 실현해 간 첨병이었다.
카알대제의 모습을 표현한 청동으로 된 황제기마상은 서유럽황제의 이상형을 구현한 것으로 로마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연상하게 한다. 황제는 왼손에 권력을 상징하는 보주를 든 위엄 있는 모습으로 넒은 제국을 다스리기 위해 말을 타고 순시하고 있다. 말은 앞발을 내디딜 듯 생동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게르만민족 특유의 다이내미즘을 나타낸다. 조각상에 묘사된 카알대제의 모습은 당시의 역사가 아인하르트가 그의 전기에서 묘사한 모습과 일치한다.
(사진6) 황제기마상, 청동, 8/9세기, 루브르박물관, 파리, 카알대제는 독일어로는 카알(Karl), 불어로는 샤를마뉴(Charlemagne), 이탈리아어로는 카를루스(Karlus)라고 불리운다. 유럽연합(EU)의 성립과 더불어 유럽통합의 상징으로 각광받고 있다.
4. 고대 그레코-로만(Greco-Roman)의 전통과 켈트-게르만(Celtic-Germanic)족의 활기차고 역동적인 문화가 기독교신앙에 의해 융합된 중세적 미술의 극명한 경우를 거의 같은 시기에 제작된 두 복음서의 필사본 삽화의 비교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9세기 초 아헨에서 제작된 궁정양식의 코로네이션 복음서의 마태기자는 황금빛 후광이 없다면 로마인의 초상을 그대로 옮겨놓은 모습이다.
그는 학자처럼 복음서를 적고 있다. 힘찬 육체와 부각된 머리, 몸에 두른 흰 토가의 양감, 음영의 깊이 등에서 고전미술의 충실한 수용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7) 마태기자, 코로네이션복음서(Coronation Gospel), 800-810년경, 아헨제작, 미술사박물관, 비인
반면에 랭스에서 제작된 지방 수도원양식의 에보복음서의 마태사도는 아름답게 균형 잡힌 고대나 비잔틴의 인물이 아니라 성령충만한 가운데 말씀을 받아 적고 있는 종교적 영감에 사로잡힌 모습이다.
천사가 전하는 말씀을 받아 적는 마태는 두렵고 긴장한 나머지 머리카락은 곤두서고 옷자락은 심하게 뒤틀려 떨고 있고 얼굴과 목에선 땀이 흐르며 부릅뜬 그의 눈은 긴장되어 신에 홀린듯하다.
(사진8) 마태기자, 에보복음서(Ebo-Evangeliar), 830년 경, 랭스제작, 시립도서관, 에페르네(Epernay), 프랑스
눈에 보이는 물질적 세계의 재현·모방이 아닌 보이지 않는 비물질적인 내면의 영적·정신적인 모습을 묘사하는 중세적 양식이 출현한 것이다.
카롤링거왕조기에 알프스이북에서 태어난 이 양식은 문화사적으로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그리고 게르마니즘의 종합으로 같은 종교미술이면서도 비잔틴미술과는 다른 방향을 향하였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최초의 서유럽 미술인 로마네스크양식을 예비하고 있는 것이다.
임재훈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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