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군도: 민란의 시대' 하정우 스무 살 개구쟁이 같은 캐릭터

입력 2014-07-15 17:26

“이성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영화가 아닌 심장이 뛰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어릴 적 극장에서 보면서 나도 모르게 심장박동이 빨라졌던 영화들. 액션이든, 웨스턴이든, 무협영화든 이들이 안겨주는 쾌감의 실체는 액션활극이었다.” 윤종빈 감독이 ‘군도: 민란의 시대’를 촬영하면서 밝힌 연출의도다. 14일 시사회를 통해 베일을 벗은 영화는 윤 감독의 의중이 십분 발휘됐다.

시대 배경은 탐관오리의 수탈과 정부의 무능 속에 힘없는 백성이 쫓기듯 지리산으로 들어가 도적이 되던 철종 13년(1862). 권력과 폭력이 결탁했던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윤 감독의 전작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2012)와 상황이 비슷하다. 만연한 부정부패 속에서 애먼 백성만 고통을 겪는다는 점에서 조선 후기 민초들의 삶은 1980년대와 별반 다르지 않다.

‘범죄와의 전쟁’에서도 그렇고 ‘군도’에서도 중심을 잡아가는 배우는 하정우다. 윤 감독과 오랫동안 영화를 함께해 눈빛만 봐도 서로의 심정을 안다는 하정우를 15일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한 카페에서 만나 허심탄회한 얘기를 들어봤다. 전날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열린 기자시사회에 이어 VIP 특별시사회에 쏟아진 반응부터 꺼냈다.

“저는 재미있게 봤는데 관객들은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죠. 관객의 선호도와 평가도 각자 하겠지만 이 영화의 목적이 진짜 재미있는 오락영화를 만들자는 거였어요. 남녀노소 다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자고 윤 감독이 제안했고 좋다고 했죠. 그렇게 봤다면 다행이에요.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면 대체 어떤 걸 기대했을까 하고 의문이 가요,”

하정우는 “대서사시 느낌은 있지만 진중하고 무거운 영화보다는 독특한 편집으로 재미있게 가공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재미가 조금 없다고 한다면 내러티브 서사를 민란의 시대, 민중이 자각하는 부분 때문에 그럴 것”이라며 “오락영화를 강조하다보니 다른 것이 약해지는 측면은 있다. 하지만 액션활극이 그걸 충분히 변명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화는 민초들의 힘으로 세상을 바꾼다는 주제의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정작 민초들이 나오는 장면은 얼마 안 된다. 그는 “제가 맡은 도치와 강동원이 맡은 조윤의 대결, 트라우마와 상처의 싸움에 포커스를 맞추다 보니 아쉬움은 있을 수 있다”며 “다섯 장으로 구성된 영화에서 지리산 화적떼 소굴인 추설로 갔을 때 에피소드가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 있었다”고 했다.

하정우는 아이처럼 순진한 열여덟 살 캐릭터로 나오다 스무 살에 도적이 되는 역할이다. 하정우가 시종 어둡고 강인한 정극의 얼굴이라면 백성들을 괴롭히는 악랄한 역할을 맡은 강동원은 판타지의 이미지다. 일부에서는 “감독이 강동원을 편애하나?”라는 얘기가 나왔다. 하정우는 이에 대해 “각자 역할이 있고 장단점이 있다”고 말했다.

‘롤러코스터’와 ‘허삼관 매혈기’ 등 영화감독으로도 활동 중인 하정우는 “감독을 해보니 촬영 배우들의 스케줄 때문에 순서대로 찍지 못하고 한 장면 촬영하는 데 몇 시간을 기다리는 이유를 알겠더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그는 “윤 감독은 준비를 치밀하게 많이 했고 정말 엄청난 성장을 했구나 하고 느꼈다”고 밝혔다.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가고 만들지는 감독의 고유 권한이기 때문에 왈가왈부할 게 없어요. 배우들이 이래라 저래라 간여하고 고집이나 욕심을 부리면 원래 줄거리와 다르게 가요. 감독할 때는 ‘왜 저러지? 왜 우왕좌왕하지?’하고 생각도 했지요. 이번에는 전부 프로 배우들이고 베테랑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톱니바퀴처럼 돌아간 것 같아요.”

윤 감독과 학창시절 마틴 스코시즈 감독의 영화를 좋아했다는 그는 어려울 때부터 자연스럽게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관계를 쌓아가면서 친하게 됐다고. 대학 졸업 후 ‘용서받지 못한 자’로 만나 ‘범죄와의 전쟁’에 이어 이번 작품의 주역 도치를 맡게 된 것도 11년 전 대학 다닐 때 공연했던 연극 ‘오델로’의 캐릭터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밝혔다.

촬영하면서 어려움은 없었을까. “분장하는 데만 서너 시간이 걸려요. 분장이 끝나고 나면 진이 다 빠져요. 촬영이 시작되면 벌써 기가 50% 꺾인 상태인 거죠. 짚신을 신고 단검을 들고 서 있으면 하체가 후들거려요. 메이크업 지우는 시간이 또 1시간 정도 걸려요. 강원도 삼척 등 오지 산속에서 촬영하니 300~400㎞ 이동하는 것도 장난 아니었어요.”

가장 힘든 것은 말 타는 장면이었다. 몇 년 전 낙마한 후 다시는 말을 타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그가 아니던가. “그냥 타는 것도 아니고 주먹으로 때려서라도 전력 질주해야 하니까 죽을 맛이죠. 말을 타기 전에 심리치료부터 받았어요.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해서죠. 광야에서 말 달리는 첫 장면을 크랭크인 7개월 후에 찍었으니 그때까지 긴장의 연속이었죠.”

소를 잡는 백정 출신으로 무식하고 힘밖에 쓸 줄 모르는 도적이지만 밉지 않다. “눈밭에 묻혀 있다 일어나는 장면에서 물개처럼 보이지 않아요? 어릴 적 장난치는 것 같고 신이 나서 눈을 반짝이던 소년 같은 캐릭터라고나 할까요. 관객들이 웃으면서 귀엽게 봐주시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요. 초등학교 1·2학년 정도의 개구쟁이 같은 느낌의 이미지랍니다.”

하정우는 이번 영화에서도 ‘먹방’을 선보인다. 먹을 게 없어 대파를 한입에 넣고 씹는다. 그는 “허삼관 매혈기’의 하지원이 가르쳐 달라고 자꾸 조른다”며 “이 영화에서 만두와 돼지간을 먹는 장면이 있는데 어떻게 전수해줄까 고민 중”이라고 했다. 이번에 함께 출연한 조진웅 이경영을 ‘허삼관 매혈기’에 캐스팅했다는 그는 “감독 개런티는 현 시세대로 쥐꼬리만큼 받았다”며 웃었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