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문일답] 상남자 홍명보 “감독 자리에서 이순신 장군 생각…이젠 카터 될 것”

입력 2014-07-10 13:54
사진=2002년 인생에서 가장 빛났던 순간의 홍명보. 국민일보DB

홍명보는 ‘상남자’였다. 상남자는 진짜 남자, 남자 중의 남자를 말한다.

홍명보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감독은 10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대한축구협회에서 사퇴 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자리에서 내려오며 그는 가슴 속에 담고 있던 말을 일부 털어놓았다.

사퇴를 먼저 이야기하지 않은 이유는 2014 브라질월드컵 부진에 대한 비판을 오롯이 받아들이고, 반성하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기자들과의 일문일답 마지막에 홍 감독은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감독 자리에서 항상 이순신 장군을 떠올렸다고 했다. 사퇴 후에는 미국의 지미 카터 대통령처럼 재임 기간 못했던 봉사 활동을 열심히 하겠다고 밝혔다.

성적 부진과 잠깐의 유임을 일거에 뒤엎는 말들이다. 원문 그대로 독자들께서 읽어주셨으면 한다.

다음은 홍명보 감독이 기자들과 나눈 일문일답.

-처음 유임 요청을 받아들인 이유와 다시 사퇴 의사를 굳힌 이유는 무엇인가.

=실제로 알제리전 끝나고 사퇴에 대한 마음이 있었다. 벨기에전 끝나고 사퇴에 대해 말씀을 드렸고. 여러분들 아시겠지만 새로운 사람이 와서 6개월이라는 시간을 가지고 팀을 만든다는 것은 쉽지는 않다. 간단히 제 사퇴로만 이어졌다고 하면 저 역시도 무책임한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동안 같이 했던 선수들이 눈에 밟혔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와 반성의 시간을 가지면서 자진사퇴 문제는 스스로 결론을 내고 판단했다. 아직까지 많이 부족한 점이 있고 우리 이 선수들과 함께 다시 잘 할 수 있는 에너지가 과연 있는지, 그런 것도 많이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 한국 축구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저 역시도 그동안에 잘못됐던 점, 그런 것들을 잘 반성하고 후회하는 점도 잘 많이 생각을 해서, 아직까지는 부족하다는 생각을 해서 결국 사퇴를 하게 됐다.

-땅 구입 소식이 알려지고 대표팀 회식 사진이 유출됐는데, 억울하지 않는가.

=땅 부분은 아주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었다. 그동안 그렇게 비겁하게 살지 않았다. 언론에서 제기하는 훈련 시간에 나와서 그런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는데 그건 절대 아니다. 그런 식으로 지금까지 살지 않았다. 동영상 문제는 벨기에전 끝나고 이구아수 캠프 돌아왔고 우리 선수들에게 이구아수 폭포를 갔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선수들이 더 이상 감독에게 짐을 지어 싫다고 해서 가지 않았고. 그 당시 사퇴 생각을 했기 때문에 이 자리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린 선수들이 패배에 대한 슬픔이 너무 컸고 그 부분을 위로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신중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사퇴 결심 후에 이번 월드컵에서 얻었던 결과나 장·단점에 대해 정의한 부분이 있는지.

=일본에 있는 친구로부터 편지가 한 통 왔다. 아시아에서 모든 팀들이 다 떨어지고 다 감독이 바뀌었는데 제 유임 소식을 듣고 한국은 좋겠다고 했다. 이유는 월드컵의 자산이 남았기 때문에 앞으로 더 잘할 수 있지 않느냐는 편지였다. 물론 그 안에는 철저하게 저의 반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무엇이 잘못됐고 무엇이 틀렸는지, 어떤 점이 좋았는지에 대해서는 한국에 돌아와서 아주 많이 생각을 했다. 여러 전술적인 부분도 잘못됐고 선수들의 컨디션적인 부분도 잘못됐고. 이번 월드컵이 앞으로 한국 축구에 있어 많은 자산이 됐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월드컵에서 해왔던 모든 것은 축구협회에 넘겨 축구협회가 다음 월드컵을 준비하는 데 좋은 참고 자료로 되도록 하겠다. 특히 제가 실패하고 좋지 않았던 부분을 다 넘길 계획이다.

-대표팀 감독직은 독이 든 성배라고 한다. 1년간 느낀 점이 있는가.

=뭐 꼭 그렇지는 않다. 한국 축구는 많이 발전했고 그 부분에 있어 선수들도, 지도자들도 많이 발전했다. 하지만 독이 든 성배의 본질은 주위에 많은 영향이 있겠다. 하지만 그 부분은 알고 시작한 것이었고 오랜 시간 여기있었기 때문에 더욱 올바르게 가려고 했다. 모든 것이 결과론이기 때문에 좋지 않은 결과를 가지고 온 감독이기 때문에 모든 게 다 실패한 거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앞으로도 어떤 분이 새로 오실지는 모르겠지만 여기 계신 모든 분이 한국 축구를 위해 많은 도움을 주셨으면 한다.

-향후 계획은? 또 월드컵 준비 과정서 아쉬운 점이라면.

=향후 계획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제가 이 일을 하면서 등한시했던 우리 가족들한테 다시 가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월드컵의 실패 원인을 찾다 보니 제 머리 속에 드는 하나의 생각이 예선을 거치지 않은 감독이었다는 점이다. 예선을 거쳤다면 그 선수들의 장단점을 충분히 알 수 있었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러지 못하다 보니 처음 취임했을 때 팀의 골격, 그런 것들은 역시 제가 아는 선수들로 짜는 게 좋다는 생각을 했다.

-엔트‘으리’ 논란과 알제리전 준비 미흡, 선수 컨디션 저하 등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월드컵을 나가는데 내가 좋아하는 선수들만 데리고 가야겠다라고 생각하는 감독은 세상에 없다고 생각한다. 저 역시도 더 철저하게 검증을 했고 더 냉정하게 판단을 했다. 그 부분에서 100% 어느 누구에게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런 부분이 좋지 않게 비춰진 것에 대해서는 실수가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경기 끝나고 4일이 있는데 대체적으로 4일 동안 어떤 훈련을 하냐면 대체적으로 이틀 정도 회복훈련을 한 뒤 컨디셔닝 트레이닝을 하고 전술적인 훈련을 한다. 하지만 선수들의 피로도 등을 감안해야 한다. 알제리전에서 핵심적인 상대 전술이나 주요 선수 모습을 선수들에게 보여줬다. 선수들의 컨디션과 피로도를 생각했을 때 지난 경기에 우리의 어떤 점이 잘못됐는지도 봐야 한다. 알제리전은 물론 대응에 실패했다. 결과적으로 상대 전술에 대처하지 못한 것은 저의 불찰이었다. 컨디션 문제에 있어서는 결과적으로 좋지 않았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다. 선수들의 체력이 올라오는 수치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경기체력이라는 부분에서 부족하지 않았나. 후반에 체력이 떨어지는 모습 보였는데 그것 역시 저희가 상대와 비교했을 때 뛰는 양이나 그런 부분이 많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감독 부임이후 가장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비판이라면.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 자리는 가장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비판이고 거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비판도 많이 받고 했지만 저한테 있어서 선수들은 제대로 훈련을 하고 경기를 하고 팀에 돌아가 어려운 위치에 있었지만 용서를 받고 경기를 할 수 있었다는 것에 개인적으로 만족하고 있다.

-벨기에전 끝나고 황보관 기술위원장에게 사의 표명했던 사실을 왜 숨겼나.

=말씀드린 것 같이 공항에 나와서 그 말씀을 드리면 저는 그냥 쉽게 그냥 아주 작은 비판을 받고 책임을 지는 모습, 그걸로 떠나면 됐다. 정몽규 회장과 말씀을 나누고 과연 이 6개월 안에 어떤 새로운 사람이 와서 팀을 다시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계약기간이 아시안컵까지였기 때문에 아시안컵까지 책임을 다하고 싶었다. 쉬운 선택의 길이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조금 더 어렵지만 모든 사람들이 약속을 지키는 데 있어 그것까지 하고 싶었다.

-축구협회로부터 그만두겠다는 말을 하지 말라는 압박이 있었는가.

=애도 아닌데 하지 말라고 안하고 그러는 것 아니다. 왜 이렇게 시간이 걸렸냐면 사퇴하고 유임하고는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았다. 더 중요한 것은 저의 철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어떻게 보면 더 중요한 시간이었다. 여기에 대해 책임지고 떠나고 그럴 수 있고 비판도 많이 안 받을 수 있지만 비판을 끝까지 받고 떠나는 게 마지막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난주 사퇴를 접었다가 오늘 번복했다. 그 사이 어떤 점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는가.

=글쎄. 명예회복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다시 좀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다. 제 명예는 축구에서 얻은 것이기 때문에 축구에서 떨어져도 아무렇지 않다. 축구인생에서 아주 성실하게 경기에 임했다. 또 항상 최선을 다했다. 저는 24년 정도를 계속 여기 있다 보니 조금은 많이 지친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앞으로 가는 데 있어 에너지 부분도 많이 생각을 했다. 왜냐면 지금보다도 훨씬 어려운 길이었기 때문에. 어려운 길 택할 수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사퇴를 결심한 것은 제가 가진 모든 능력들이 앞으로 아시안컵까지 가기는 무리라는 것이다.

-앞으로 더 감독을 하지 않겠다는 느낌이 드는데.

=글쎄. 축구 선수도 했고 코치도 했고 감독도 했다. 저는 앞으로도 그동안 해왔던 사회 활동도 많이 해야 하고 주위에 어려운 사람들도 많이 도와줘야 한다. 여담이지만 미국 대통령 재임 기간 중에 제일 역할을 하지 못한 대통령이 지미 카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임기 이후에 미국 대통령 중에 가장 훌륭한 업적을 남긴 분이 지미 카터 대통령이다. 기본적으로 축구와는 상관이 없지만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항상 머릿속에 새기며 축구를 해 왔고 지도자 생활을 해 왔다 그 부분은 앞으로도 계속 가져가야 하는 부분이다. 최선을 다해서 아주 기분이 좋고 대한민국을 위해 많이 성원을 받은 것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많은 카메라를 받을 일이 없었는데 오늘 좀 더 많이 받고 떠나겠다. 이제는 그동안 부족했던 점 또 공부해서 다시 여러분 앞에 나타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동안에 축구를 통해 한국 국민들에게 정말로 감사하고 정말로 고맙다는 말씀 전해드리고 싶다.<끝>

사진=2002년 인생에서 가장 빛났던 순간의 홍명보. 국민일보DB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