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는 공항입니다. 벽에 붙은 콘센트 옆에서 아이폰의 하얀 충전기를 꼽고 수많은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습니다. 이어 수난 과정이 그려집니다. 공항 청소하시는 분이 매정하게 충전기를 빼버립니다. 콘센트에 충전기를 꼽고 아이폰으로 통화를 해야 하는 수트 차림의 남성은 코 앞에서 물을 마시려는 다른 남성의 엉덩이를 바라봐야만 합니다. 아이폰 사용자들이 불쌍해 보입니다.
반면 삼성 갤럭시S5를 쓰는 한 남성은 배터리를 갈아 끼웁니다. 이를 지켜보는 콘센트 옆 아이폰 사용자는 “지금 배터리 갈아끼우는 거냐”라며 놀랍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이폰 뒷면을 돌린 뒤 한 숨을 내쉽니다. 금발에 아이폰 쓰는 여성이 충전할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그 옆의 동양계 여성은 “난 괜찮아”라며 갤럭시S5의 배터리 10% 남아도 초절전모드로 생명력을 이어가는 기능을 선택합니다.
그러면서 삼성은 말합니다. “초절전 모드와 교체가능 배터리를 가진 갤럭시S5로 벽을 껴안는 사람이 되지 말라”고요. 또 진지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다음번 혁신은 여기에 있다(The Next Big Thing Is Here)”라고요.
애플 아이폰 사용자를 ‘벽 붙박이’라고 부른 건 삼성보다 블랙베리가 먼저입니다. 앞서 존 첸 블랙베리 CEO는 한 발표회장에서 “공항에서 아이폰 충전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면서 “나는 아이폰 이용자를 벽을 껴안는 사람들이라고 부른다”고 했습니다.
아이폰 배터리가 내장형이고, 배터리 충전을 자주해야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배터리가 조루이면 스티브 잡스 전 애플 CEO가 열어준 화려한 모바일 신세계를 즐길 수 있는 시간도 짧아집니다. ‘계속 갈구하고, 계속 무모하라(Stay Hungry, Stay Foolish)’는 명언을 남긴 잡스 CEO가 살아 있었다면 벌써 해결됐을지도 모르지요.
이 영상은 4일 오후까지 43만회 이상 조회수를 올리며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 미국법인이 올린 듯한데, 영어로 된 영상임에도 한글 댓글이 더 많습니다. 파워트위터리안이자 국내 한 신문의 IT전문기자인 ‘광파리’는 이 영상이 불쾌했나 봅니다. 그는 삼성을 상대로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면서 “2분기 실적이 애플은 생각보다 좋다고 하고, 삼성은 생각보다 나쁘다고 하고... 다급해진 걸까요?”라고 했습니다.
다급한 건지 아닌지는 며칠 뒤 실적 발표가 나와 보면 알겁니다. 단, 삼성이 “다음번 혁신은 여기에 있다”라며 선전하는 대상이 영상에선 고작 배터리라는 게 좀 마뜩찮습니다. 포털 사이트 아이디 Hu*******는 소식을 접한 뒤 “단순히 배터리 탈부착만 가지고 조롱하기엔 좀”이라며 “참신한 기술력으로 승부했으면 좋겠다”라고 했습니다. 동감입니다. “다음번 혁신은 배터리 갈아 끼우기다” 이럼 좀 웃길테니까요.
사진=삼성의 조루 광고, 트위터리안 광파리 댓글 촬영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